올 들어 기업들의 영구채(신종자본증권) 조기 상환이 이어지는 가운데 내년 콜옵션(조기 상환 권리) 행사가 가능해지는 롯데쇼핑, 포스코, 포스코에너지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채권을 조기 상환하지 않으면 금리가 더 낮아져 조기 상환을 원하는 투자자들에게 항의를 받고 기업 재무상태에 대한 신뢰도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대한항공은 영구채를 차환(상환한 뒤 새로 발행)하는 게 좋지만 악화한 신용도가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롯데쇼핑·포스코, 영구채 조기상환 "고민되네"
◆영구채 조기상환 잇달아

CJ제일제당의 인도네시아 법인 ‘PT CJ인도네시아’는 지난 4월 2000억원 규모 영구채를 갚은 뒤 같은 금액의 영구채를 아리랑본드(외국 기업이 국내에서 발행하는 원화표시채권) 형태로 발행했다. 이후 신세계건설이 영구채(500억원)를 차환했다. 두산인프라코어(5567억원), 한국서부발전(1000억원)도 콜옵션을 행사해 영구채를 갚았다. 현대상선도 다음달 200억원 규모 영구채를 상환할 계획이다.

기업들이 영구채를 잇달아 조기 상환하는 것은 자금조달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다. 후순위채인 영구채는 발행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금리가 높아진다. 대신 금리를 재산정하는 시점(통상 발행 5년 뒤)에 발행회사가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놓는다.

하지만 내년에 영구채를 조기 상환할 수 있는 기업들의 사정은 다르다. 포스코가 2013년 발행한 8000억원 규모 30년 만기 영구채가 대표적이다. 내년 6월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연 4.3%인 금리가 오히려 낮아진다. 5년 만기 국고채 금리에 1.3%포인트를 더 얹는 식으로 금리가 재조정되도록 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국고채 5년물 금리(연 2.275%)로 계산하면 연 3.575% 수준이다.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고려해도 이 영구채에 붙는 금리는 기존보다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포스코의 발전 자회사인 포스코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가 2013년 8월 찍은 영구채(3600억원, 금리 연 4.66~4.72%)도 내년 8월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5년 만기 국고채 금리에 1.39~1.45%포인트 가산한 수준으로 금리가 바뀐다. 롯데쇼핑은 내년 11월 2700억원 규모 영구채(금리 연 4.72%)를 갚지 않으면 5년 만기 국고채에 1.5%포인트를 더한 수준으로 금리가 변경된다.

◆조기상환 원하는 투자자

금리가 낮아지는데도 이들 기업이 영구채를 그대로 안고 가긴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투자자들이 조기 상환을 원하고 있어서다. 기관투자가 대부분은 발행회사가 나중에 콜옵션을 행사할 것이란 전제 아래 영구채에 투자한다. 영구채가 ‘금리가 높은 5년 만기 채권’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발행회사가 영구채를 조기 상환하지 않으면 투자자 사이에서 평판이 나빠질 위험이 있다”며 “신용도가 낮은 기업은 재무상태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로 비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영구채를 조기 상환하고 재발행하면 높은 금리를 감수해야 한다. 채권을 발행한 2013년보다 신용도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포스코의 신용등급은 ‘AAA’에서 ‘AA+’로, 포스코에너지는 ‘AA+’에서 ‘AA-’로 떨어졌다. 롯데쇼핑도 ‘AA+’에 ‘부정적’ 전망이 달렸다.

이들 기업보다 재무상태가 나쁜 대한항공은 더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회사는 내년 6월(2100억원)과 11월(3440억원) 영구채 조기 상환이 가능해진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2100억원어치 영구채 금리는 연 6.4%에서 연 10% 수준으로, 3440억원어치는 연 2.5%에서 연 6.5%로 오른다. 채권을 갚으면 회계상 자본으로 잡힌 5540억원이 유출된다. 올 3분기 기준 3조382억원인 자본 규모가 2조원대로 줄어들면 735.5%까지 떨어뜨린 부채비율이 다시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 영구채

만기 없이 이자만 지급하는 채권이다. 주식과 채권의 중간 성격을 띠어 신종자본증권(하이브리드채권)으로도 불린다. 원금 상환 의무가 없어 국제회계기준상 자본으로 인정된다. 만기는 없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돈을 갚을 수 있는 콜옵션이 있어 대부분 중도 상환이 이뤄진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