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사모곡(思母曲)
‘꽃미남’박상현(34·동아제약)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어머니가 두 분 계신다”.한 분은 낳아주신 어머니,또 다른 한 분은 장모님이다.

장모님,아니 ‘어머님’과의 인연은 동갑내기 아내 이비나씨(34)를 만난 대학(경희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로골퍼가 꿈’이라는 그와 캠퍼스 커플이던 딸에게 장모님은 ‘꿈이 있다면 됐다’며 흔쾌히 교제를 허락했다. 장모님은 7년이 넘는 긴 연애기간 동안 박상현을 친아들처럼 챙겼다. 결혼해서도 ‘박서방’이라 부르지 않고 ‘우리 상현이’라 불렀다.

2009년 투어 데뷔 5년만에 생애 첫 승을 따냈을 때 장모님은 눈물을 보이며 기뻐하셨다. 지난해 일본 투어 시즌 최종전 JT컵에서 일본 무대 진출 3년만에 첫 승을 신고했을 때도 가장 먼저 축하메시지를 보낸 이도 그였다. “상현이는 몸이 재산”이라며 철마다 녹용을 달이고, 기침을 달고 살던 사위에게 수세미 차를 끓여 보내시던 ‘세심한’ 장모님이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성적이 좋지 않을 때면 어김없이 숙소에 약봉지가 배달돼 있었다. TV경기중계를 보다 사위의 얼굴표정이 어둡다고 느낄 때마다 건강식품과 보약을 챙겨보낸 것이었다. 신장이 좋지 않아 힘겨워하면서도 사위의 안부가 늘 관심 1순위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원아시아 투어 대회를 치를 때였다. 박상현은 아내 비나씨가 첫 아들 시원이(4)를 낳은 줄도 모르고 경기에 몰입해 있었다. 나흘간의 투어를 마치고 귀국한 날 그는 아내의 출산을 뒤늦게 알았다. 왜 연락을 하지 않았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장모님이 ‘어차피 낳을 아이였는데 대회에 집중하도록 연락하지 말라’고 하셨대요. 덕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2라운드에서 죽을 쑤다 3,4라운드에서 힘을 내 상위권으로 대회를 마쳤죠.”

박상현은 늘 죄스러웠다고 했다. 전국을 떠돌고, 해외 투어를 오가느라 전화로만 안부를 전할 뿐이었기 때문이다.일본 투어를 집중적으로 뛰기 시작한 2014년부터는 더더욱 죄스러움이 커졌다. 장모님은 그래도 늘 손사래를 쳤다. “내가 매일 방송으로 보고 있으니까 신경쓰지 마.내 취미가 상현이 라이브 스코어 보는 거라니까.”

박상현은 지난 24일 일본 고치현 고치쿠로시오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카시오 월드 오픈 2라운드 도중 기권했다.1라운드를 공동 15위로 마쳐 상위권 진입을 노리던 때였다. 6번 홀을 마치고 7번 홀로 이동하던 그에게 경기위원이 다가오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장모님이 돌아셨다고 한다.”

박상현은 그 길로 대회장을 빠져나왔다. 차를 몰고 공항이 있는 오사카까지 360km를 달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두 달 전 마지막으로 찾아뵜던 장모님의 얼굴만 계속해서 떠올랐다. 둘째 출산일을 두 달여 앞둔 아내는 빈소로 달려온 그를 끌어안고 ‘와줘서 고맙다’며 울었다.

박상현은 오는 30일 열리는 일본 투어 시즌 최종전 JT컵도 출전하지 않는다. 올 시즌 상금 상위권 30명만이 출절할 수 있는 ‘파이널 매치’인 이 대회는 지난해 그에게 일본 무대 첫 승을 안겨준 인연이 있다. “코스와 궁합이 이상하게 잘 맞았다”는 게 그의 기억이다. 큰 일을 다 치렀으니,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고 싶진 않았을까. 더구나 최종전은 우승상금이 4억여원, 꼴찌를 해도 1000만원가량이 돌아오는 푸짐한 연말 잔칫상이나 마찬가지. 박상현은 그러나 고개를 저었다. 12월로 예정돼 있던 해외 전지훈련도 3월로 미뤘다고 했다.

“첫애를 낳을 때도 제가 없었어요. 그 땐 장모님이 아내를 챙겨주셨는데,이젠 제가 해야죠. 장모님도 그걸 바라실 거구요.”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