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주가 이끄는 상승장에서 한동안 소외됐던 음식료주가 반등하고 있다. 내수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국제 곡물 가격이 하락해 원재료 수입 부담이 줄어들면서 실적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최근엔 신제품 출시와 해외 영토 확장 등을 통해 새롭게 ‘성장 스토리’를 쓰는 종목들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원자재값 하락 호재

20일 유가증권시장에서 CJ제일제당은 1만6500원(4.14%) 오른 41만5000원에 마감했다. 최근 1년 내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달 들어 CJ제일제당의 상승률은 13.38%다. 이날 음식료업종에선 대상(5.36%) 오뚜기(4.69%) SPC삼립(5.41%) 동원F&B(3.64%) 등도 강세를 나타냈다. 음식료업종지수는 2.51% 상승해 유가증권시장 전 업종 가운데 섬유·의복(3.24%) 다음으로 많이 올랐다.

음식료주는 유가증권시장이 박스피(박스권에 갇힌 코스피지수를 뜻하는 말) 장세를 연출했던 2015년에 안정적으로 꾸준히 실적을 낼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부각되며 주도주로 부상했다. 하지만 작년부터 글로벌 경기가 회복세를 타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수출주로 수급이 쏠려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엘니뇨, 라니냐 등 이상 기후 현상이 나타나면서 국제 곡물 가격이 폭등해 원재료값 부담이 커진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성장 레시피'로 입맛 되살린 음식료주
음식료주가 반등의 계기를 마련한 건 하반기 들어서다. 작년 말 주요 기업들이 라면 맥주 참치캔 등 제품 가격을 인상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화 강세와 주요 원자재값 안정으로 비용 부담은 줄어들었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 따르면 밀가루를 만드는 밀 가격은 지난 7월 초 이후 20.7% 떨어졌다. 설탕값도 연초 대비 20% 넘게 하락했다.

주가가 작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부담도 덜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15년 말에 음식료업종의 주가수익비율(PER·주가/주당순이익)은 31.12배에 달했지만, 지금은 19.86배로 떨어졌다.

◆성장스토리 갖춘 음식료주는

상당수 음식료주의 약점으로 성장성에 한계가 있다는 게 꼽힌다. 내수시장이 한정돼 있는 가운데 대형 유통업체들이 자체상표(PB) 제품을 앞세워 경쟁을 강화하고 있는 점도 불안요소다.

한국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음식료 업체들을 둘러싼 경영환경은 나쁘지 않지만 이것만으로는 장기적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기 힘들다”며 “기업들의 변화와 새로운 성장 스토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원자재 비용이 감소하면 실적이 개선되고, 증가하면 악화되는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업체들에 주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일반 맥주와 맛은 비슷하지만 세금 부담이 적어 가격이 싼 발포주를 내놓은 하이트진로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 4월 기존 맥주보다 40% 이상 저렴한 발포주 ‘팔라이트’를 선보인 뒤 부진의 터널에서 벗어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필라이트 효과로 올 3분기에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맥주사업 부문에서 분기 흑자를 냈다.

필립모리스의 전자담배 ‘아이코스’에 맞서 ‘릴’을 내놓은 KT&G도 이달 들어 11.32% 오르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상반기 아이코스 돌풍에 주춤했지만 가격이 더 저렴하면서 편의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릴을 앞세워 반격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CJ제일제당과 대상은 해외 사업 성장으로 내수 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이 회사들은 돼지사료의 주성분인 라이신, 핵산 등을 생산한다. 최근 경기 회복으로 중국의 돼지고기 수요가 늘면서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고 있다.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중국 업체들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라이신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업계 추정치 평균)는 CJ제일제당 2129억원, 대상 178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35.7%, 95.4%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