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된 주식에 장기투자하는 가치주펀드에서 ‘뭉칫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올 들어 순유출 자금은 3조원을 넘어섰다. 정보기술(IT)·바이오주와 같은 성장주가 시장을 주도하면서 가치주는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손실을 내던 일부 가치주펀드 수익률이 회복되자 시장 흐름을 따라 돈을 빼내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상승장서 외면받는 가치주펀드

'가치주펀드의 굴욕'… 올 들어 3조원 이탈
29일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가치주펀드 96개에서 3조758억원이 순유출됐다. 에프앤가이드가 분류하는 테마펀드 30종 중에서 가장 많은 자금이 빠져나갔다. 두 번째로 자금 유출이 많은 공모주펀드(2조1669억원)보다도 1조원 가까이 더 많다.

가치주펀드에서 자금이 대거 빠져나간 이유는 성장주 장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IT주가 코스피지수 사상 최고 기록을 주도하고 있다. 주가 상승률 상위권에 포진한 전기차·바이오주 등도 모두 성장주다.

가치주펀드는 기업의 내재가치보다 저평가된 주식에 투자해 장기보유하는 전략을 활용한다. 매니저들은 기업가치를 철저하게 따져 가치주를 선별하기 때문에 미래 주가수익률(PER·주가/주당순이익)이 높은 IT나 바이오 종목 등 성장주를 담기 어렵다. 가치주는 주로 금융 조선 음식료 등의 업종에 몰려있다.

'가치주펀드의 굴욕'… 올 들어 3조원 이탈
일반적으로 상승장에서는 성장주가, 하락장이나 횡보장에서는 가치주가 각광받는다. 가치주에 포함되는 종목은 주로 대형주보다는 중소형주, 시장 대표주보다는 개별 종목인 경우가 많다. 때문에 주식시장이 대형주 중심으로 오를 때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 가치주펀드는 올 들어 평균 11.29% 수익을 냈다. 액티브 주식형펀드 전체 수익률(16.84%)을 크게 밑돌았다.

올해 가장 많은 자금이 유출된 가치주펀드는 신영자산운용의 ‘신영밸류고배당’이다. 올해 16.74%의 양호한 수익률을 내고 있지만 5622억원이 순유출됐다. 이 밖에 한국밸류10년투자(4293억원) 메리츠코리아(3804억원) 등 가치주 ‘간판 펀드’에서도 자금이 대거 빠져나갔다.

◆“가치주 투자 비중 늘릴 때”

가치주펀드는 지난해에도 혹독한 시기를 보냈다. 지난해 가치주펀드는 평균 3.59%의 손실을 냈다. 올 들어 상승장에서 일부 가치주펀드가 수익률을 회복하자 이탈 규모가 커졌다는 분석도 있다. 원금을 회복한 투자자들이 앞다퉈 환매에 나섰다는 얘기다. 올해 4886억원이 순유출된 ‘KB밸류포커스’ 수익률은 지난해 -3.06%에서 올 들어 6.63%까지 회복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당분간 성장주 중심의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IT업종의 이익 증가세가 견조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성장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짜더라도 가치주 투자 비중을 늘릴 때라는 조언도 나온다. 유동원 키움증권 글로벌전략팀장은 “성장주와 가치주 간의 밸류에이션(가치평가) 괴리가 커져 간극이 다시 좁아질 시점”이라며 “장기금리가 점차 올라가면서 대표적인 가치주인 금융과 에너지업종의 매력도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리 인상기에는 미래 주가에 대한 할인율이 커지기 때문에 성장주처럼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높은 기업들이 약세로 돌아서는 경향이 강하다는 설명이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