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현 기자 byun84@hankyung.com
변성현 기자 byun84@hankyung.com
1999년 9월30일. 동해화력발전소 1·2호기가 가동에 들어가자 발전소의 순환유동층발전보일러(CFBC)탈황 설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연탄을 원료로 삼고 있던 동해화력발전소에서 나던 황냄새와 분진을 제거해주는 이 장치는 비디아이(당시 백두산업 주식회사)가 개발했다. 식품 및 사료 제조 분야의 플랜트 사업을 주로 하던 비디아이가 회사 최초로 생산한 발전소 보조기기였다. 순수 국내 기술로 제작한 첫 사례이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발전소 제반 설비는 거의 외국에서 수입해야 했습니다. 국내 기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00~300년간 발전소 설비 기술을 보유해왔던 독일, 스위스 등지에서 비싼 값에 장비를 수입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런데 1999년 동해화력발전소에 설립된 지 채 5년이 되지 않았던 국내 업체가 개발한 발전소 장비가 처음으로 공급된 것입니다. 그것이 비디아이 제품이었습니다."

안승만 비디아이 대표(사진)는 발전소 설비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발전소에 보일러 탈황 설비를 팔아 30억원을 벌었던 비디아이는 연매출 1000억원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안 대표는 "그때 공급한 장비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지난달 28일 서울 가산동에 위치한 비디아이 본사에서 안 대표를 만났다.

◆ 한우물 파니 찾아온 기회

비디아이는 화력발전소의 아황산가스를 제거하는 탈황설비, 연소가스에 함유된 분진이나 검댕같은 물질을 정전기력을 이용해 포집·제거하는 전기집진기 등을 주로 생산하는 업체다. 1996년 한국동서발전이 발주한 동해화력발전소 1·2호기의 탈황 설비를 수주한 이후 현재까지 발전소 기기 설비 사업을 해왔다.

"20여년간 한 우물만 판 셈이죠. 진득히 한 길만 걷다보니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안 대표는 회사 설립 이후 두 번의 도약기를 맞았다고 했다. 첫 기회는 2000년도에 찾아왔다.

"2000년 12월에는 한국중공업이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두산그룹에 인수되면서 한국중공업이 독점하던 발전소 기기 시장이 개방됐습니다. 하지만 설비를 납품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간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발전소 기기를 생산할 수 있는 국내 업체가 길러지지 않은 탓이었습니다. 시장 개방에 따른 수혜를 몇 안되는 발전소 설비 업체들이 받게된 것이죠. 비디아이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비디아이는 2004년 화성공장을 준공했다. 국내 발전소 시장 개방으로 일감이 늘면서 대형 설비 수주 능력을 키우기 위한 조치였다. 이에 따라 2006년에는 보령화력발전소 7·8호기 발전 설비를 수주했다. 안 대표는 "이 설비를 공급하면서 2006년 68억원 수준이었던 매출액이 일년 만에 4배 가까이 늘어 2007년 261억원으로 뛰었다"고 말했다.

보령화력발전소 7·8호기에 설비를 납품한 후부터 수주 물량은 꾸준히 늘었다. 하동화력발전소, 영흥화력발전소, 여수화력발전소, 동해화력발전소, 삼척그린화력발전소, 태안화력발전소 등에 추가로 설비를 공급했다. 안정적인 매출이 이어졌다.
변성현 기자 byun84@hankyung.com
변성현 기자 byun84@hankyung.com
◆ 미세먼지 덕에 맞이한 두 번째 도약기

그러던 중 비디아이에게 한 번의 기회가 더 찾아왔다. 미세먼지 이슈가 터진 것이다. 화력발전 시 발생하는 오염 물질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탈황·집진 설비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태안화력소 9·10호기에 탈황설비 및 전기집진기 등의 친환경 설비를 수주했습니다. 석탄취급설비 수요도 늘었습니다. 석탄취급설비는 석탄 연료를 운반하거나 저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진의 비산을 억제하는 설비를 말합니다. 이 설비는 지난해 고성하이화력발전소 1· 2호기에 납품했습니다."

전국 40여개 화력발전소에 대한 미세먼지 감축 대책이 시행되면 향후 5년간 탈진 설비 시장은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안 대표는 예상했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석탄화력발전소에 총 10조원을 투자해 2015년 대비 미세먼지를 24% 줄인다는 방안을 내놨다. 올해 5월 한국전력과 5개 발전자회사는 사장단 회의를 열고 향후 5년간 7조5000억원을 환경설비 개선 등에 투자하기로 했다.

"탈황·탈질설비, 전기집진기나 석탄취급설비 등 발전소 관련 기기들은 단기간에 개발·생산할 수 있는 설비가 아닙니다. 진입 장벽이 매우 높은 산업이죠. 기존에 납품 실적과 기술 특허를 보유한 업체들이 수혜를 입을 수 밖에 없습니다."

◆ "화력발전소 건설 중단…걱정 안 한다"

우려도 있다. 미세먼지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면서 정부는 화력발전소의 신규 건설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기존 화력발전소에 대한 탈진 설비 수요는 증가하겠지만 신규 화력발전소의 건설이 제한되면서 중장기적인 장비 수요는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안 대표는 "크게 걱정 안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화력발전소의 비중은 전체 발전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규 발전소가 생기는 것은 제한될 수 있겠으나 기존 발전소를 없애는 것은 어렵죠. 비용 문제와 전력 수급 어려움 등 때문입니다. 기존 화력발전소의 친환경 장비 교체 수요만 해도 시장은 매우 큽니다. 특히 발전소 설비 관련 기술을 가진 업체가 3~4개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공급보다는 수요가 더 많은 상황이라고 봅니다."

해외 시장에서 화력발전소 설비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도 우려감을 낮춘다. 인도, 중국, 베트남 등 전기 수요가 급증하는 개발도상국에서 화력발전소 건립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너지청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석탄화력발전량은 2012년부터 연평균 1% 가까이 증가해 2040년에는 10조6000억 킬로와트시(kwh)에 달할 전망이다.

이에 발전 관련 업체들은 해외 수출 비중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비디아이 또한 마찬가지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화력발전소 신규 건설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들 시장에서 비디아이가 공급하는 발전소 관련 설비는 인기가 높은 편입니다. 일본, 유럽, 미국 등의 업체에 비해서는 가격이 낮고 중국 업체에 비해서는 프리미엄 이미지가 있어 각광받고 있습니다."

현재 비디아이의 전체 매출 중 해외 시장의 비중은 30% 가량이다. 2022년까지 해외 매출 비중을 70%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코스닥 상장도 이를 위한 조치다.

"해외 시장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코스닥 상장을 통해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국내외 시장에서 화력발전소의 설비 용량이 늘면서 1000억원 이상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한 운영 자금도 필요했습니다."

비디아이는 지난 1월 코넥스시장에 상장했으며 다음달 9일 코스닥시장으로 이전상장한다. 상장 공모자금은 128억2500만~162억원. 주당 공모예정가는 9500원~1만2000원이다. 대표주관사는 신영증권이 맡았다.

※ VC는 왜 비디아이에 투자했을까요? ☞ 비디아이, VC가 75억원 투자한 까닭은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