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너도나도 자칭 전문가… '진짜 지식'은 그렇게 사라진다
지난 6일 밤 한 종합편성 채널의 시사 프로그램에서였다. 진보 성향의 한 문화평론가가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미군이 자동개입한다”고 하자 맞은편에 앉은 군사전문가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다른 패널들도 “한·미 동맹에 따라 자동개입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군사전문가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간 조약에는 자동개입이 명시돼 있지만 한·미 동맹 조약에는 그런 게 없다”며 “하지만 북한이 남침하면 서부전선의 미군 2사단과 바로 맞닥뜨리게 되므로 사실상 미군이 자동개입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구분이 모호한 시대다. 수많은 TV 채널의 각종 프로그램에는 이른바 ‘전문가 패널’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얼마나 전문적인지는 알 수 없다. 전공 분야가 다른 사람들이 패널로 나서 의견을 주고받고, 해설자가 넘쳐난다. 미국도 우리와 상황이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책마을] 너도나도 자칭 전문가… '진짜 지식'은 그렇게 사라진다
《전문가와 강적들》은 정보 과잉 시대에 너도나도 전문가임을 자처하면서 진짜 전문가가 무시당하고 설 자리를 잃는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한 책이다. 저자 톰 니콜스는 다트머스대, 조지타운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거쳐 미국 해군대학 교수로 일하는 러시아 문제 전문가다. 러시아 문제에 대해 자기를 가르치려는 비전문가들 때문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인터넷 검색 같은 방법을 통해 얄팍한 지식이나 정보로 무장한 ‘일반인’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전문가들이 몰락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책 원제가 ‘전문지식의 죽음(The death of expertise)’인 이유다. 그는 “평범한 미국인의 수준이 ‘아는 게 별로 없는’ 상태를 넘어 ‘잘못 알고’ 있기까지 한 데다 ‘잘못된 지식을 대놓고 우기는’ 지경까지 내려왔다”고 개탄한다. 전문지식을 거부하거나 업신여기는 걸 자기만족이나 자기과시 수단으로 삼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결과의 심각성이다. 1990년대 초 ‘에이즈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에이즈 원인이라는 의학계의 합의를 부정하는 주장을 내놨다. 에이즈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영양실조나 허약한 건강상태 같은 다른 요인 때문에 걸린다는 것. 증거나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타보 음베키 대통령은 이런 주장에 동조하면서 HIV 전염을 막기 위한 다양한 원조를 거부했다. 3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3만5000명의 아이가 HIV 양성반응을 보인 뒤에야 음베키는 태도를 바꿨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미국의 군사 개입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에선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위치도 모르는 사람들이 군사 개입을 더 열렬히 지지했다. 살균처리를 하지 않은 생우유가 더 맛이 있고 건강에도 좋다는 일부 미식가의 주장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저자는 인간이 지닌 확증편향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확증편향은 자기가 이미 믿고 있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증거만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자연스러운 경향이다. 사적 경험, 편견, 두려움, 속설, 미신 등이 확증편향을 부추긴다. 확증편향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교육을 많이 받았거나 똑똑한 사람이 음모론을 믿는 경우다. 음모론은 그 자체로 너무 복잡해서 반박하기가 쉽지 않고, 반박이 또 다른 복잡함을 빚어낸다. 반면 음모론은 극적인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솔깃해서 위험하다.

오염된 정보의 발원지이자 조력자인 인터넷, 비판적인 지식인을 기르기보다 학생을 고객으로 모시며 학점과 학위를 남발하는 대학 교육, 소비자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는 대신 소비자가 알고 싶어 하는 것만 알려주려는 언론도 전문지식을 죽음으로 내모는 공범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물론 전문가가 틀릴 때도 있다. 기형아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탈리노마이드를 임신부에게 진정제로 처방했던 일, 1970년대 미국 영양학자들이 계란은 몸에 해롭다며 불러온 계란공포증이 그런 사례다. 하지만 그래도 전문가가 틀릴 확률은 일반인보다 현저히 낮다는 것이 저자 설명이다.

전문가에 대한 불신으로 ‘나나 너나 뭐가 달라?’라는 심리가 만연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전문가와 일반인의 관계는 ‘민주적’이지 않다고 강조한다. 정치적으로는 모두가 평등하지만 재능, 식견 수준은 똑같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에 대한 불신은 결국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이 설치는 터전을 제공하고 민주주의를 해친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모두가 사드와 원전의 전문가가 돼버린 듯한 한국의 현실에도 이 말이 아프게 와 닿는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