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사 200개 '눈앞'… 진입 문턱 낮추니 새 일자리 1800개 생겼다
국내 자산운용회사가 200개 돌파를 눈앞에 뒀다. 1997년 국내 첫 자산운용사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설립된 지 20년 만이다.

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날까지 국내에 등록된 자산운용사는 193개다. 이르면 이달 안에 7개 자산운용사가 신규 등록할 예정이어서 200개 돌파가 임박했다. 김영진 금감원 자산운용감독실장은 “운용사 등록을 신청한 7곳의 심사가 조만간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완화가 불러온 운용사 전성시대

운용사 수는 설립 요건이 완화(자본금 60억원→20억원)되고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뀐 2015년 10월 이후 급속도로 늘었다. 실력 있는 펀드매니저들이 대거 창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규제 완화 이후 설립된 운용사만 106곳으로 이전 18년간 생긴 운용사(87곳)보다 많다.

운용사가 늘면서 일자리도 증가했다. 국내 자산운용사 임직원은 지난 6월 말 기준 6819명이다. 2015년 10월(5019명)에 비해 1800명(35.8%) 늘었다. 규제 완화는 시장의 판도 변화도 불러왔다. 문수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기발한 투자 전략과 높은 수익률로 무장한 ‘신흥 강자’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창업 나선 스타 펀드매니저들

전문가들은 국내 자산운용사가 급증한 요인으로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를 꼽는다. 금융위원회가 2015년 10월 운용사 신설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고 설립 요건을 자본금 60억원에서 20억원으로 낮춘 게 큰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스타 펀드매니저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나와 회사를 차리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시장 전반에 큰 자극을 줬다는 것이다.

박현준 씨앗자산운용 대표(한국투자신탁운용 출신)와 박지홍 GVA자산운용 대표(안다자산운용 출신), 강대권·장동원 유경PSG자산운용 투자본부장(한국밸류자산운용 출신), 최광욱 J&J자산운용 대표(에셋플러스자산운용 출신)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자신의 투자 경력과 수익률 등 이름값을 앞세워 회사를 옮길 때마다 수백억~수천억원의 고객 자금을 몰고 다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새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국내 자산운용사는 규제가 풀린 2015년 10월 이후 106개가 늘어 200개 돌파를 앞두고 있다. 운용사 증가세는 설립이 상대적으로 쉬운 ‘한국형 헤지펀드’가 주도했다. 2015년 말 13곳이던 한국형 헤지펀드는 현재 97개로 급증했다. 한국형 헤지펀드는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해 시황에 관계없이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사모펀드다. 기존 사모펀드보다 운용 관련 규제를 덜 받는다.

◆한국형 헤지펀드 1~3위는 신생 회사

신생 운용사들은 국내에 생소한 투자 전략을 선보이며 투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지난해 4월 한국형 헤지펀드시장에 뛰어든 흥국자산운용이 대표적이다. 기존 헤지펀드들은 대부분 오를 것 같은 주식을 사고(long), 떨어질 가능성이 큰 주식은 빌려 파는(short) ‘주식 롱쇼트’ 전략을 쓰고 있지만 흥국자산운용은 ‘채권 롱쇼트’ 전략을 들고나왔다. 금리 방향성에 ‘베팅’하는 기존 채권 펀드와 전혀 다르다.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 핌코나 ‘채권왕’ 빌 그로스 등이 구사하는 방식으로, 국내에서 이런 전략을 사용한 운용사는 흥국자산운용이 처음이다.

김현전 흥국자산운용 대표는 “후발 주자이지만 새로운 전략으로 차별화한다면 기존 헤지펀드 운용사들과 경쟁할 만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설립 이후 1년4개월 동안 9399억원을 끌어모으며 업계 3위(설정액 기준)로 올라섰다.

한국형 헤지펀드의 설정액 1, 2위도 ‘신참’들이 차지했다. 1위는 기존 증권사 안에 헤지펀드 조직을 꾸린 교보증권(설정액 1조9460억원)이다. 타임폴리오자산운용(설정액 1조455억원)은 꾸준히 안정적인 성과를 내며 2위를 달리고 있다. 이 회사는 업계 최초로 ‘멀티매니저’ 시스템을 도입했다. 채권, 메자닌(전환사채 등 주식·채권의 성격을 모두 가진 상품) 등 투자 대상별로 매니저를 두고 각자 알아서 운용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펀드업계에 나타난 ‘메기효과’

자산운용사 진입 규제를 완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산업이 급부상하기도 했다. 인공지능(AI) 로봇을 활용한 투자자문 서비스인 ‘로보어드바이저’ 업체가 주인공이다. 업계에선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들이 공모펀드시장에 진입한 지난해 4월 이후 일종의 ‘메기효과’가 일어났다고 입을 모은다. 연못에 메기 한 마리를 풀어놓으면 다른 물고기들이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더 많이 움직이는 현상으로, 막강한 경쟁자가 다른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말한다.

옐로모바일의 손자회자 쿼터백자산운용이 공모펀드를 낸 이후 은행과 증권사들은 시장을 선점당하지 않기 위해 비슷한 상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1년 반 동안 자산운용시장에 진입한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만 30곳이 넘는다.

업체들이 앞다퉈 차별화된 자산 배분 서비스에 나서면서 금융소비자들이 더욱 다양한 투자 전략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