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지침) 활성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이 코드 도입의 첫걸음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새 제도를 받아들이기 전 필수단계인 연구 용역을 맡길 외부 기관을 세 차례 입찰을 하고도 뽑지 못하고 있어서다.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전문가 그룹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가 지나치게 도입을 서두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국민연금공단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4월27일 처음 ‘스튜어드십 코드 연구용역 입찰 공고’를 냈지만 입찰 마감일인 5월8일까지 한 곳도 서류를 내지 않아 유찰됐다. 이어 5월30일까지 재입찰을 받은 결과 의결권 자문기관인 서스틴베스트와 고려대 산학협력단이 서류를 제출했다. 하지만 두 기관 모두 외부 위원들로 구성된 기술평가위원회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아 탈락했다. 연구 목표의 달성 가능성과 연구 책임자의 연구 경력, 팀 구성 등에서 합격점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26일 연구비를 8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증액한 새로운 입찰 공고를 내놨다. 연구 제목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책임투자’를 추가했다. 하지만 지난 5일 마감한 입찰에 한 곳의 기관만 단독 응찰해 또 다시 유찰됐다. 국민연금은 6일 곧바로 재입찰 공고를 냈지만 연구 기관을 뽑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국내 자본시장에 미칠 영향을 조사하는 연구 용역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 정도 수준의 연구를 수행할 전문가도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시장에 혼란만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