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까지 펀드 환매하던 개미들…코스피 2300 넘자 '사자' 행렬
“돈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국내 설정액 1위(2조3339억원) 펀드인 ‘신영밸류고배당’은 연초부터 밀려드는 환매로 몸살을 앓았다. 5% 안팎의 수익을 내자마자 차익을 실현하는 개인투자자가 급증한 탓이다. 상반기에 빠져나간 자금만 역대 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인 6694억원(신영밸류고배당 펀드 설정액의 22.2%)에 달했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사장은 “연초부터 투자자와 프라이빗뱅커(PB)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 ‘돈을 더 넣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지만 강세장을 확신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펀드는 최근 6개월간 17.16% 수익률을 냈다.

최근 2년간 순유출 일변도였던 펀드 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신영밸류고배당 펀드(194억원 순유입) 등 수익률 상위권 펀드를 중심으로 지난달에만 2265억원이 유입됐다. 허 사장은 “코스피지수가 2300선을 돌파한 때부터 강세장이 지속될 것이라고 판단한 개인투자자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박스권 매매 패턴에 변화

국내 개인투자자는 그동안 ‘장기 박스권’(코스피지수 1800~2200선)에 유용한 투자 전략을 써왔다. 코스피지수가 1900을 밑도는 시점에서 주식형 펀드나 지수 연동 상장지수펀드(ETF)를 사고, 2100선을 넘어서면 기계적으로 내다팔았다. 지난 5~6년간 지루한 ‘박스피(박스권+코스피)’ 장세를 보면서 몸에 밴 이른바 ‘조건반사 투자공식’이다. 국내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이 낮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과거의 ‘학습 효과’ 탓에 주가 상승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스피지수가 2200선을 넘어 2300선까지 뚫고 올라가면서 개인들이 시장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시장 흐름에 민감한 ‘큰손’ 투자자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투자자의 1억원 이상 대량 주문은 하루 평균 1만1803건을 기록했다. 2015년 7월 1만3108건을 기록한 뒤 가장 많았다. 지난 1월 6712건이던 1억원 이상 주문은 지난달 1만 건(1만129건)을 돌파한 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기온창 신한금융투자 투자자산전략 부장은 “단기 고수익을 노리고 장세에 따라 움직이는 ‘스마트 머니’가 먼저 움직이고 있다”며 “일반 개인투자자까지 가세한다면 파괴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의 시각 변화엔 우상향하고 있는 기업 실적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와이즈에프앤에 따르면 실적 추정이 가능한 266개 코스피 상장사의 영업이익 전망치(6월 30일 기준)는 189조3909억원이다. 지난해 12월 전망했을 당시(168조1547억원)보다 12.63% 늘어났다. 1분기 ‘깜짝 실적’(어닝서프라이즈)을 반도체와 은행 업종이 이끌었다면 이후엔 철강 가전 건설 기계 증권 등 전방위적으로 기업 실적이 개선될 것이란 전망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전경대 맥쿼리투신운용 주식운용팀장은 “1분기에 끝날 줄 알았던 어닝서프라이즈가 2분기에도 이어진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이어 “연내 코스피 2000선이 무너져 1900대로 다시 내려가는 급락 장세가 펼쳐질 가능성은 낮다”며 “지금 들어가도 큰 손해를 보진 않을 것이란 확신이 개인 사이에 퍼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ELS·MMF는 자금 유출

증권사들도 개인의 증시 복귀 움직임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지난 3일부터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대세 상승에 올라타자’는 제목의 프로모션을 시작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코스피지수가 2800선까지 올라갈 것으로 내다보고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상품 ‘세일즈’에 나선 것이다.

자산가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NH투자증권 여의도영업부금융센터가 모집한 트리니티자산운용의 주식형 사모(헤지)펀드는 3일 만에 70억원이 들어왔다. 국내 헤지펀드 시장엔 지난달 1조1207억원이 유입됐다.

반면 박스권 장세에서 인기를 끌던 상품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지난해 8월 8조702억원까지 늘었던 주가연계증권(ELS) 발행액은 지난 5월 4조3297억원으로 감소했다. 지난달에도 5조3438억원이 발행되는 데 그쳤다. 당장 투자처가 없을 때 돈을 잠깐 맡겨두는 ‘창고’ 역할을 하는 머니마켓펀드(MMF) 자금도 지난달 10조132억원이 순유출됐다.

김우섭/나수지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