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례 공판에도…'이재용 뇌물죄 증거' 제시못한 특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일가에 수백억원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개 재판이 두 달을 훌쩍 넘겼다.

100여명의 피고인과 참고인 진술 조서가 재판정에서 공개됐고 노승일 전 코어스포츠·K스포츠재단 부장 등 핵심 증인 4명의 심문이 재판정에서 이뤄졌다. 이 부회장을 구속할 당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자신했다.

◆검찰 측 핵심 증인도 불출석

하지만 이 부회장 변호를 맡고 있는 변호인단은 재판에서 “공판이 거듭될수록 특검 측의 부실 조사와 끼워 맞추기식 조사를 한 정황만 잔뜩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1위 기업 오너를 3개월째 구속 수사하고 있으면서 아직도 뇌물을 주거나 받았다는 결정적인 증거 없이 정황 증거만 내놓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의 12회 공판은 재판 시작 10분 만에 끝났다. 삼성 측의 최씨 일가 승마 지원 핵심 증인으로 여겨지는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가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씨와 최씨의 딸인 정유라 씨에 대한 삼성 측 승마 지원은 대기업 오너 중 유일하게 이 부회장만 구속된 핵심 사유다. 재판부가 밝힌 불출석 사유는 박 전 전무가 송환장을 받지 못했다는 것. 이에 대해 부장검사 출신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는 “검찰 측의 핵심 증인이 출석도 하지 않은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뇌물죄 입증할 증거 있나

특검팀은 재판부가 첫 공판에서 요구한 증거도 아직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당시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2차 독대일(2015년 7월25일) 이전 삼성 측이 최씨가 박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라는 사실을 인지한 증거를 제출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후 이날 공판에 이르기까지 특검 측이 제시한 증거는 최씨 심복이던 노 부장의 진술 조서 정도다. 재판에서 공개된 노 부장 진술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하는 대가로 삼성이 (정유라를) 지원해준 것 아닌가 생각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난 10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노 부장은 “합병 대가라는 게 증인의 생각 아니냐”는 변호인단 질문에 “그렇다”고 털어놔 방청석의 실소를 자아냈다. 또 “삼성이 정유라가 최씨의 딸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말한 진술 근거에 대해서는 “일부 언론에 보도된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라는 당시 청와대 행정관의 보고서”라고 답변했다.

이 부회장 측 문강배 변호사는 “당시 모든 언론이 청와대 보고서를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보도했다”며 “노씨의 진술은 추측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강압·부실 수사 의혹도

특검이 강압 수사와 끼워 맞추기식 수사를 한 정황도 다수 드러났다.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특검으로부터 크게 두 가지 강한 요구를 받았다”며 “그중 하나가 삼성 합병 과정에서 대통령 지시를 받고 제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진술”이라고 털어놨다.

10일 증인으로 출석한 김찬형 전 비덱스포츠 재무담당 직원은 “삼성에서 최씨 모녀에게 말을 사준 것 같다”는 취지의 진술에 대해 “그 당시에는 몰랐던 내용인데 특검 사무실에서 정황을 검사님이 얘기해줬고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부분이라 동의해서 진술한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가 불러주는 대로 증거 조서를 남겼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재판부조차 “막연한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며 “증인은 아는 것만 말하면 된다. 모르면 모른다고 대답하라”고 당부했다.

좌동욱/이상엽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