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채권시장의 ‘큰손’ 국민연금이 회사채시장에 다시 돌아왔다. 대우조선해양 채무 재조정 문제로 신규 발행 회사채 투자를 중단한 지 20여일 만이다. 국민연금의 복귀로 우량기업의 장기 회사채 발행이 활기를 띨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AAA)이 회사채 2000억원어치를 발행하기 위해 전날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받은 수요예측(사전 청약)에 국민연금이 매수 주문을 넣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말 대우조선 채무 재조정안이 발표된 뒤 대우조선 회사채에 투자한 국민연금과 사학연금 등 주요 연기금들은 산업은행 금융위원회와 조정안 내용을 놓고 법적 책임 등을 검토하느라 신규로 발행하는 회사채에는 투자하지 못했다. 이후 국민연금은 지난 17일 새벽 채무 재조정안을 수용하기로 했고, 17~18일 열린 사채권자집회가 마무리되자 19일 회사채 투자를 재개했다.

국민연금의 복귀로 신용등급 AA급 이상 우량기업의 장기 회사채 발행이 원활해질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회사채 신규 투자를 하지 않았던 사학연금 등 다른 연기금들도 국민연금과 함께 한국수력원자력의 수요예측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일 동안 국민연금의 투자 공백 여파로 일부 AA급 기업의 장기채 발행금리는 예상보다 높은 수준에서 결정되고, 단기물 중심으로 수요 쏠림 현상 등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 증권사 회사채 발행 부문 임원은 “국민연금의 복귀로 장기물 발행시장이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참여에 힘입어 한수원의 수요예측은 흥행에 성공했다. 2000억원어치 발행에 총 6100억원 규모의 매수주문이 몰려 경쟁률은 3 대 1을 웃돌았다. 만기별로 1000억원어치 발행 예정인 3년물에는 2900억원, 500억원어치를 발행할 10년물에는 1400억원, 500억원어치를 찍을 계획인 20년물에는 1800억원의 투자 수요가 몰렸다. 발행 실무는 주관사인 KB증권이 맡았다.

특히 초장기물인 20년물에는 국민연금을 비롯해 장기물을 많이 담아야 하는 주요 보험회사들의 매수주문이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발행금리도 한수원의 시가평가 금리보다 0.10%포인트 낮은 수준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이번 수요예측 흥행에 힘입어 한수원은 20년물을 1100억원으로, 3년물을 1400억원으로 증액해 총 발행 규모를 3000억원까지 늘리기로 했다.

한수원이 기관투자가들과 원활한 소통에 나선 것도 수요예측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그동안 증권신고서를 쓰지 않아도 되는 일괄신고제로 회사채를 발행해온 한수원은 사상 처음으로 수요예측제도를 이용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