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예금으로 원화 채권 사는 자산가들
예금통장에 묻어둔 미국 달러화로 원화 채권을 사들이는 거액 자산가가 늘고 있다. 달러 예금은 이자가 연 1%대 초반에 불과하지만 이를 원화 채권에 투자하면 같은 1%대 초반 이자에 0.5%포인트가량의 추가 수익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1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하나은행이 지난달 다섯 차례에 걸쳐 사모 방식으로 판매한 ‘달러 투자 통화안정증권(통안채) 펀드’에 총 4300만달러(약 490억원)의 투자금이 몰렸다. 최소 가입액이 10만달러(약 1억1400만원)인 이 펀드는 투자자가 달러로 투자하면 운용사인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원화로 환전해 통안채를 사고, 만기가 되면 수익금을 다시 달러로 지급하는 구조다. 연 1.2~1.3%인 통안채 이자에 원·달러 교환(스와프) 과정에서 생긴 차익(0.5%포인트)을 더해 총 1.7~1.8%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만기는 1년이다.

달러 예금으로 원화 채권 사는 자산가들
하나은행 관계자는 “저금리 추세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0.5% 수익이라도 더 챙기려는 거액 자산가들이 높은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개인의 달러 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102억6000만달러(약 11조7000억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시중은행의 1년 만기 달러 예금 금리는 연 1.2~1.3%다.

이 펀드는 달러화 현물을 팔고 선물을 사는 방식으로 환율 변동 위험을 헤지(회피)한다. 만약 원·달러 현물 환율이 달러당 1100원이고 선물 환율이 1000원일 경우 투자자는 100원만큼의 환차익을 거둘 수 있다.

현재 원·달러 현물 환율은 선물 환율보다 높게 형성돼 있다. 두 환율 간 격차를 의미하는 원·달러 스와프 포인트는 한국 금리가 미국 금리보다 높으면 플러스, 반대인 경우엔 마이너스를 나타낸다. 작년 5월 3원대였던 원·달러 스와프 포인트는 8월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계속 내려 지난 17일 -7원60전까지 떨어졌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은 본격적인 금리 인상기에 접어든 반면 한국은 10개월째 금리를 동결하면서 양국 간 시장 금리가 역전된 결과”라고 말했다. 보험사 등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해외 투자를 늘리면서 달러 현물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것도 원·달러 스와프 포인트가 확대되는 요인이다.

마이너스로 돌아선 원·달러 스와프 포인트를 활용한 차익 거래는 외국인 투자자가 흔히 활용하는 기법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달 3조7630억원어치 통안채를 순매수(매수-매도)했다. 전체 원화 채권 순매수액(4조4380억원)의 84.8%에 달하는 규모다. 문홍철 동부증권 연구원은 “만기가 짧은 통안채에 투자하는 것은 채권 가격 상승(금리 하락)에 베팅하는 것이라기보단 현·선물 환율 간 격차를 활용한 ‘무위험 차익 거래’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KB증권이 지난달 이 같은 구조로 출시한 ‘KB able 외화 Sell-Buy 신탁’에도 2200만달러(약 250억원)의 투자금이 몰렸다.

이 연구원은 “미국 중앙은행(Fed)이 연내 두 차례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원·달러 스와프 포인트는 마이너스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자산가들의 관심이 높아 추가로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 통화안정증권

통안채. 한국은행이 시중 통화량을 조절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 경상수지 흑자나 외국인 투자금 유입으로 시중 유동성이 과도하게 늘어나면 이 증권을 발행해 통화량을 줄인다. 만기는 대부분 1년이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