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문재인과 안철수의 '위험한' 진검승부
대권 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안풍(安風·안철수바람)’이란 돌발변수가 출현했다. 대선을 불과 26일 남겨둔 시점에서 ‘문재인 대세론’이 쑥 들어갔고, 대선 판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원내 5당이 후보를 낸 5자 구도는 이변이 없는 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이하 호칭 생략)의 양자 대결 구도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현재까지 여론 지지율만 놓고 보면 문재인이냐 안철수냐의 선택만 남겨두고 있다는 예측이 우세하다.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쟁자 자리를 놓고 맞붙었던 둘의 리턴매치다. 문재인과 안철수의 재대결은 4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고 살벌하다. 상처뿐이던 후보 단일화와 안철수의 민주당 합류 및 탈당 과정에서 쌓인 앙금은 ‘동지’에서 ‘정적’으로 변한 둘의 불편한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는 단서들이다. 단순히 ‘정적’ 간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서로를 향한 적대감의 실체는 세간에 알려진 것이 없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대선 판세가 야권으로 기울어지기 훨씬 전에도 둘의 연대나 단일화가 논의선상에 오르지 못한 이유다.

도저히 ‘한배’를 탈 수 없는 사이로 틀어진 문재인과 안철수는 닮은 점이 많다. 자의반 타의반의 정계 입문 동기를 비롯해 ‘선한 의지’로 충만한 정치적 지향점도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다. 안철수의 탈당 빌미가 됐던 혁신의제를 둘러싼 둘의 충돌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의문이다. 대선에 출마하면서 각자 내건 ‘적폐청산’과 ‘공정사회’란 캐치프레이즈가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둘은 ‘제2의 박근혜’ ‘제2의 이회창’이란 프레임을 서로에게 걸고 있다. 문재인은 안철수의 집권을 ‘적폐연대’로, 안철수는 ‘문빠공화국’으로 폄하하면서 선거전은 이미 ‘네거티브’ 경계선을 넘어섰다. 두 캠프는 인신공격성 후보 흠집내기와 가족 신상털기 등 전면전을 불사할 태세다.

유력 대선후보의 난투극은 선거 후 연정과 협치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앙이다. 갈수록 격화되는 네거티브 공방은 ‘내 삶을 바꿔줄’ 후보와 정책을 고를 수 있는 국민의 선택권을 훼손하고 있다.

누가 승리하건 차기 정부는 여소야대(與小野大)의 ‘핸디캡’을 감수해야 한다. 정권을 인수할 위원회조차 꾸리지 못한 정부는 곧바로 경제와 외교·안보 위기 등 산적한 국정현안과 맞닥뜨려야 한다. 촛불민심으로 표출된 산적한 개혁과제들도 다음 정권의 ‘가시밭길’을 예고한다. ‘이기는 것만이 정의’란 선거공학에 매몰된 두 캠프의 네거티브 경쟁이 초래할 후유증은 만만치 않다. 양측의 벼랑 끝 승부는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한 연합정부 구성은 고사하고 정책적 연대를 위한 최소한의 협치 공간마저 닫아 버릴 수 있어서다. 친노(친노무현) 좌장이자 6선의 문희상 의원이 최근 양측 캠프를 향해 쓴소리를 했다. 문 의원은 “문재인이 되든 안철수가 되든 당선된 이후에 (생길) 이 문제에 대해 지금부터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그걸 전제로 하지 않으면 서로 막가는 정치가 된다. 이건 정치도 아니다”고 경고했다. 양측의 도를 넘는 네거티브 공방과 감정 싸움을 지적한 동시에 어느 쪽이 집권하더라도 양측 간 협치와 연대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손성태 정치부 차장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