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뮤직은 전날 장 마감 후 내보낸 유상증자가 특급 호재로 작용해 지난 16일 장중 한때 최근 3개월 내 최고가로 올랐다. 반면 레저용품 업체 우성아이비는 다음날 유상증자 공시를 내자 1년 최저가로 곤두박질쳤다. 같은 유상증자 공시인데도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정반대였다. 전문가들은 공시에 담긴 숨은 의미를 파악해야 주가의 방향을 제대로 예측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실제 호재성 공시 같아 보이면서도 주가에 악재로, 악재성 같아 보이면서도 호재로 작용하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주가에 별다른 영향이 없어 보이는 공시가 폭발력을 나타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제 다시 주식이다] 수주 공시 나와도…정기 공급계약이거나 기간 길면 주가 '무덤덤'
◆유상증자에도 등급이 있다

유상증자는 신주 발행으로 인해 기존 주식의 가치가 희석되기 때문에 주가에 악재인 측면이 있다. 전체 주주나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유상증자일수록 이런 성격이 강하다. 주주와 일반 투자자에게 손을 벌릴 정도로 회사 재무상황이 악화됐다는 신호인 경우가 많다. 운영자금 마련이 목적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 유상증자 공시에서 ‘증자 방식’과 ‘자금조달 목적’ 항목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주가에 악재로 꼽힌 우성아이비의 유상증자는 운영자금 마련을 위한 목적에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이다.

반면 반도체 장비 기업인 로체시스템즈는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 공시인데도 주가가 올랐다. 지난 1월10일 장 마감 후 공시를 내보낸 다음날 장중 한때 1년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번 유상증자는 조달한 자금 188억원 가운데 운영자금 35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시설투자와 연구개발 등에 사용하는 목적이었다. 반도체 경기가 호황인 가운데 투자를 주요 목적으로 한 유상증자 공시가 주가에 호재가 됐다.

회사의 성장성을 높게 본 기관투자가나 사업 제휴를 맺으려는 타기업에 신주를 배정하는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도 호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공시에서 ‘배정 대상자’ 항목을 반드시 살펴야 하는 이유다. KT뮤직이 다음달 진행하는 유상증자는 LG유플러스에 신주를 배정해 2대 주주로 올라서게 하는 방식이다. LG유플러스는 이번 지분 투자를 계기로 KT뮤직과 음원 엔터테인먼트 인공지능(AI) 등 분야에서 상호 협력을 공고히 한다는 계획이다.

◆공급 계약도 기간 따져야

공급 계약(수주)은 주가에 즉효를 나타내는 공시다. 지난해 9월 한미약품 사태처럼 공급 계약 공시로 주가가 급등했다가 바로 다음날 다른 건의 계약 해지 공시로 곤두박질치는 사례도 나온다. 공급 계약은 기업 실적에 플러스 요인이라는 점에서 대부분 호재가 된다. 하지만 주가가 무덤덤하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매년 또는 특정 시기마다 내보내는 정기 공급 계약 공시인 경우다. 공시에 정기라는 명칭이 따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가 직접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비철금속 업체인 피제이메탈은 지난달 14일 최근 매출 대비 25.9%에 달하는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는 공시를 내보냈다. 이날 다른 동종 업체들은 상승세였는데도 피제이메탈은 주가에 변동이 없었다. 매년 포스코와 체결하는 계약인 데다 공급량도 전년 대비 소폭 줄었기 때문이었다.

공급 계약 공시에서는 계약 금액 못지않게 계약 기간이 중요하다. 금액이 커도 장기간에 걸친 계약이라면 실적이 사업연도별로 쪼개져 반영될 수밖에 없다. 항공부품 업체 하이즈항공은 지난 13일 최근 매출 대비 13.7% 규모의 공급 계약을 공시했다. 주가는 당일 0.7% 오르는 데 그쳤다. 계약 기간이 2025년까지여서 올해 미치는 영향이 적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었다.

◆감사보고서에 숨은 정보

투자 기업에 대한 기초 정보를 파악하려면 감사보고서도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감사보고서는 재무제표나 감사의견 항목 외에 주석에서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기업은행은 지난 10일 공시한 감사보고서 주석에서 “한국과 이란 간 원화결제업무가 규정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대해 미국 검찰 요청으로 (회사 차원에서) 내부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 검찰이 자국 이란제재법 위반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2011년 국내 한 무역회사가 위장 거래를 통해 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 명의의 계좌에서 1조원가량을 빼내 해외로 송금한 사건과 관련해서다. 아직 미국 검찰에 정식으로 고발·고소당한 건이 아니어서 기업은행이 별도로 공시할 의무는 없다. 투자 정보 제공을 위해 감사보고서에 관련 내용을 기재했을 뿐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혐의가 드러나면 미국 검찰로부터 거액의 벌금을 부과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사정을 예민하게 들여다보는 투자자와 그렇지 않은 투자자들 사이에는 유사시 큰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감사의견에도 중요한 투자 정보가 숨어 있는 경우가 있다. ‘적정’ 감사의견이 나오더라도 회사 존속 여부가 불확실한 재무 상황이라는 지적을 받는 경우도 있어서다. 기계설비 업체 르네코가 지난 22일 공시한 감사보고서에서 감사인은 이 회사 누적결손금이 289억원에 달한다는 등의 이유로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능력에 의문을 불러일으킬 만한 중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