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상승의 역설?
“펀드 수익률이 좋으면 뭐합니까. 원금을 회복하기가 무섭게 투자자들이 돈을 빼가기 바쁩니다.”

국내 주식형펀드를 굴리는 매니저들은 최근 코스피 상승 랠리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펀드 수익률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펀드로 자금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투자자 환매가 늘어 설정액이 쪼그라드는 펀드도 상당수다.

20일 펀드평가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펀드는 연초 이후 5.56%의 평균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글로벌 경기 회복에 힘입어 코스피지수가 연중 최고점을 갈아치우며 6.82%의 상승률을 보인 덕분이다.

펀드 수익률이 올라가는 만큼 투자자 환매에 따른 자금 유출 속도도 빨라지는 게 문제다. 올 들어 지난 17일까지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5조1118억원에 이른다. 코스피지수를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인덱스펀드(순유출액 1조8232억원)는 물론 액티브펀드에서도 같은 기간 2조3350억원가량이 빠져나갔다. 주로 ‘신영밸류고배당’(3552억원) ‘한국밸류10년투자’(1486억원) 등 대형 간판급 펀드 중심으로 1500억~3500억원씩 환매가 몰렸다.

펀드 매니저들은 최근 1년간 수익률 개선 폭이 돋보이는 펀드에서 투자자 이탈이 이어지는 점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주요 대형주에 투자하는 ‘KB한국대표그룹주’가 대표적이다. 올 들어 7.52%, 지난 1년간 14.17%의 수익률을 거두며 선전하고 있지만 연초 이후 718억원이 순유출됐다. 전체 펀드 설정액의 30%에 해당하는 자금이다.

심효섭 KB자산운용 이사는 “국내 증시가 상승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해 기관투자가들은 추가 자금을 넣고 있는 것과 달리 개인 투자자들은 환매에 급급하다”고 전했다. 그는 “과거 장기 박스권 증시만 생각한 채 코스피지수가 2100을 넘어서자 기계적으로 파는 것 같다”고 했다.

펀드 매니저들은 “글로벌 경기가 회복 국면에 진입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증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며 “2150이란 현 지수대만 보고 펀드 환매를 결정할 시기는 아니다”고 조언했다.

‘삼성코리아대표펀드’도 올 들어 7%가 넘는 수익을 냈지만 3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이 빠져나갔다. 과거 설정액이 1조원에 달한 초대형 펀드였지만 수익률이 올라오기가 무섭게 투자자들이 환매에 나서면서 현 설정액은 3700억원으로 줄었다. 신승훈 삼성자산운용 매니저는 “원금을 회복하자마자 환매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좀 더 보유해 수익을 누리는 게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