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청나라 변법자강운동 이끈 캉유웨이
변법자강(變法自强) 운동은 ‘청나라판 갑신정변’이라 보면 이해하기 편하다. 조선시대 말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났다면, 청나라의 끝자락에서 일어난 변법자강 운동은 ‘100일 천하’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 변법자강 운동의 중심 인물이 캉유웨이(康有爲)다. 캉유웨이는 1858년 3월19일 광둥성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5세 때 한시 수백 수를 외우고, 6세에 사서삼경을 공부해 일찍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25세에 과거에 낙방한 뒤 유학, 불교, 도교, 서양 학문을 익혔다. 이후 광저우에 만목학당을 세워 량치차오를 비롯한 많은 제자를 길렀다.

캉유웨이는 당시 황제였던 광서제에게 변법자강에 대한 상소문을 올렸고, 광서제 역시 이에 동의했다. 중앙관료직의 대폭 축소,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와 번역원 설립, 근대식 군대 수립, 여성의 전족 금지 등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양식으로 바꾼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달리 과단성이 부족했다. 결국 서태후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의 저항을 끝내 이기지 못했다.

개혁과 수구 사이를 헤맸던 노학자는 1927년 3월31일 69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