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주 맛에 '중독된' 중소형주펀드
중소형주를 최소 60% 이상 담아 비교적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중소형주 펀드들이 작년 삼성전자 등 대형주 비중을 크게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주 비중이 펀드의 60%에 육박해 ‘대형주 펀드’처럼 운용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대형주 강세장에서 급락하는 펀드 수익률을 방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게 펀드매니저들의 설명이다.

◆삼성전자 ‘늘고’ 한미약품 ‘줄고’

21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 42개 중소형주 펀드 가운데 구성 종목 중 ‘유가증권시장 대장주’인 삼성전자 비중이 가장 높은 펀드(작년 12월1일 기준)는 11개였다. 1년 전인 작년 1월 펀드 내 비중이 가장 높은 종목은 한미약품(5개 펀드)이었다.

대형주 맛에 '중독된' 중소형주펀드
지난해 부진했던 바이오·제약주와 달리 삼성전자의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펀드매니저의 최선호 종목이 바뀌었다. 대신성장중소형주 펀드는 우선주를 포함한 삼성전자 비중이 19.98%에 달했다. 멀티에셋2020중소형주목표전환(12.52%)과 하이중소형주플러스(10.19%)도 10%대를 넘었다. 국내 일반 주식형 펀드의 삼성전자 평균 비중이 13.01%인 점을 감안하면 높은 수준이다.

이들 펀드는 대형주 비중도 급격히 늘렸다. 현대인베스트먼트중소형배당주 펀드는 지난해 1월 대형주 비중을 26.68%에서 작년 말 57.62%로 30%포인트 이상 불렸다. KTB리틀빅스타 펀드도 같은 기간 대형주 비중이 15.98%포인트 늘어 43.07%에 달했다.

대형주 맛에 '중독된' 중소형주펀드
대형주는 유가증권시장 및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상위 5% 이내 종목(96개)이다. 이외 종목은 중소형주로 분류한다. 국내 기관투자가의 대표 격인 국민연금은 대형주 비중이 30%를 넘으면 대형주 펀드로 분류한다.

업계에서는 ‘중소형 펀드의 대형주 펀드화 현상’을 놓고 찬반 양론이 엇갈린다. 투자 철학을 바꿔서라도 대형주를 담아 벤치마크를 따라가야 한다는 긍정론과 스타일을 고수해 반등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회의론이 맞선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지난해 회사 임원에게서 ‘삼성전자보다 좋은 중소형주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마땅한 대안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며 “자의반 타의반으로 대형주 비중을 늘린 펀드매니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형주 늘려 펀드 수익률 방어”

시장 상황에 맞는 유연한 운용전략을 가져간 펀드들은 중소형주 부진 속에서도 수익률 방어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대형주 비중을 30% 이상으로 높인 9개 펀드의 1년 수익률은 평균 -1.83%였다. 일반 주식형 펀드 수익률(3.39%)에는 못 미치지만 전체 중소형주 펀드 수익률인 -7.13%보다는 5.3%포인트 앞섰다.

한 중소형주 펀드매니저는 “투자설명서에 나온 약관에만 위배되지 않는다면 대형주와 중소형주 투자 비중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시장 상황에 맞게 스타일을 바꾸면 된다”고 했다.

중소형주가 다시 살아나면 대형주 쏠림 현상이 자연스럽게 완화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예를 들어 ‘맥쿼리뉴그로쓰’ 펀드는 올 들어 펀드 내 7.28%이던 삼성전자 우선주를 모두 정리했다. 전경대 맥쿼리투신운용 주식운용팀장은 “삼성전자 주가가 190만원대에 오른 상황에서 향후 큰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는 판단”이라며 “대신 중소형주 수급이 좋아질 것으로 보고 중소형주 비율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주 비중을 늘렸던 대신성장중소형주 펀드와 맥쿼리뉴그로쓰 펀드는 최근 3개월 동안 각각 7.86%와 6.08%의 수익을 올렸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