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주식이다] 파생상품에 '초고위험' 낙인…규제가 옭아맨 증시 역동성
일본(26.21%) 홍콩(21.10%) 미국(15.84%) 한국(14.14%)….

지난해 주요국 주식시장의 변동성 지수(VIX)를 연평균으로 환산한 수치다. 이 중 한국 시장이 가장 낮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이 수치가 너무 높아도 투자 안정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지만 한국처럼 이 수치가 낮으면 시장 자체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코스피지수가 6년 이상 박스권(1850~2100)에 갇혀 있는 등 답답한 장세도 영향을 끼쳤지만 당국의 규제와 시장 진출입 시스템이 원활하지 않은 탓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생시장 왜 주저앉았나

파생상품시장 규제가 대표적이다. 코스피200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은 국내 주식(현물)을 헤지(위험회피)하는 수단이자 레버리지를 통해 시장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제고하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정부가 파생상품을 ‘초고위험’ 상품으로 낙인 찍고 2011년 이후 진입 문턱을 대폭 높이면서 상당수 개인 및 기관투자가가 국내 파생상품시장에서 등을 돌렸다. 공교롭게도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급격히 줄어든 시점도 이즈음부터다. 현물시장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파생상품시장이 강도 높은 규제로 위축되면서 현물시장의 역동성도 떨어졌다는 것.

금융위원회는 2010년과 2011년, 개인투자자 보호 명목으로 △옵션승수(거래단위) 인상 △기본예탁금 상향 조정 등 파생시장을 규제하는 방안을 잇따라 내놨다. 거래량은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2011년 세계 1위를 기록한 하루평균 거래량(1584만계약)은 2015년 하루평균 319만계약으로 12위로 주저앉았다. 이중호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규제 강화 이전에는 파생시장 내 외국인, 기관, 개인 등의 투자자 비중이 비슷했는데 지금은 외국인이 60% 이상을 차지한다”며 “이들은 알고리즘 매매를 통해, 일종의 박스권 매매(박스권 내 저점 매수-고점 매도)로 오히려 시장 변동성을 줄일 때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등 글로벌 증시와 달리 국내 증시만 정체되는 상황이 지속되자 금융위는 일부 규제완화 방안을 내놨다. 다음달부터 옵션승수(코스피선물 50만)를 기존보다 절반(25만)으로 낮추고, 오는 6월부터는 투자자가 보유한 주식(현물) 범위에서 헤지 목적으로 파생상품을 거래할 경우 기본예탁금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업계는 규제완화 효과를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30시간 사전교육, 50시간 모의거래 등의 규제가 여전히 남아 있어 개인투자자의 진입 문턱은 낮아지지 않을 것 같다”며 “금융상품을 설계할 때 파생상품을 조금이라도 담기만 하면 ‘초고위험’ 상품으로 분류하다 보니 일반 투자자에 대한 판매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좀비기업 늘어만 가는데…

시장 활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내 자본시장의 핵심 인프라인 한국거래소의 상장 및 퇴출 시스템을 좀 더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5년(2012~2016년)간 미국 다우지수의 연평균 상승률은 10.49%로 매년 채권 수익률(미국 기준금리 기준)을 10%포인트가량 웃돌았다. 투자자들이 리스크(위험)를 감수하면서 미국 주식에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처럼 미국 주식시장이 활기를 띨 수 있었던 것은 차세대 주도주로 부상할 신생기업이 쉽게 증시에 입성하면서 거꾸로 경쟁력이 떨어진 기업을 빠르게 퇴출시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한계상황에 다다른 ‘좀비기업’을 과감하게 척결한 것이 전체 시장의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금융위도 지난해 이른바 ‘테슬라 요건’을 신설해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의 코스닥 상장이 가능하도록 상장제도를 고쳤다. 하지만 좀비기업 퇴출 방안은 외면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3년 연속 적자를 내고 있는 기업 비중은 2011년 5.5%에서 2015년 10.3%로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코스닥시장에서도 7.2%에서 13.4%로 불어났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런 기업 가운데 회생 가능성이 없는 곳들을 효과적으로 솎아내면 시장 체력이 한층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상장폐지가 신속하고 과감하게 이뤄지면 기존 상장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실적 회복 노력과 주주 경영 강화에 나서는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다. 현재 국내 주식시장의 상장폐지 요건과 절차는 미국 등과 비교해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편이다. 뉴욕증권거래소의 상장기업 퇴출 요건은 주로 ‘주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30일간 평균 종가가 1달러 미만인 ‘페니 스톡’(일명 동전주) 신세가 되면 즉각 상장폐지 절차를 밟는다. 하지만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는 △2년 연속 50% 이상 자본잠식 △2년 연속 매출액 50억원 미만 △법정관리, 파산 등의 사유가 발생해야 가능하다. 이에 대해 박민우 금융위 자본시장과장은 “미국 주식은 상장폐지 되더라도 장외에서 자유롭게 거래되지만 국내 주식은 상장폐지 즉시 투자금을 날릴 수밖에 없어 당장 퇴출 요건을 손질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 변동성지수

volatility index. 코스피200지수옵션 가격을 토대로 향후 30일간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예상하는 지수다.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가 만든 S&P500지수옵션 변동성 지수(VIX)에서 따왔다. 이 수치가 낮으면 해당 주식시장에서 기업 가치 및 주가 수익률의 변동성이 저조하다는 의미로 통한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

한국경제·한국경제TV·자본시장硏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