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증권사들이 ‘싼 게 비지떡’인 서비스를 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수수료 경쟁에 매달리다 보니 거래나 상품 판매량을 늘려야 하고 그러려면 고객을 몰아가야 하지요. 고객이 돈을 버느냐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달라져야죠.”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사진)은 주식시장에 만연한 불신은 투자자, 기업과 함께 자본시장을 이끌어가는 한 축인 중개업자(증권사)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수수료 인하 경쟁에 몰두하는 바람에 위탁매매(브로커리지)뿐 아니라 어떤 서비스도 제대로 값을 치르지 않는 구조를 자초했다는 얘기다. 수수료를 너무 낮춰 돈이 안 되니 기획상품을 만들어 팔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시장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쏠림 현상은 심해졌다는 것.

안 원장은 증권가에 유행처럼 번진 주가연계증권(ELS), 브라질 채권,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선박펀드 등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특정 상품을 일정한 시기에 테마성으로 대거 팔았다”며 “이 상품을 산 투자자들이 과연 돈을 벌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아마도 사후적으로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건강한 시장 생태계를 조성해야 할 축이 되레 신뢰 상실의 ‘주범’이 됐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일부 증권사가 고객 수익률과 직원 성과를 연계하기 시작한 것은 의미있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수수료 경쟁이 불붙은 것은 시장 규모에 비해 증권사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국내 증권사는 56곳에 이른다. 안 원장은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고 심지어 파산해도 증권사는 망하지 않는다”며 “이를 방조한 금융당국의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거래대금이 줄어 위탁매매 수수료로 버티기 힘드니 새로운 상품 인가나 사업 허가를 얻어 수익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은행처럼 보호하고 규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면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증권업의 본질을 인정해야 증권사들이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맞는 수수료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 투자은행(IB) 등장 이후 업계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안 원장은 “자기자본이 커졌으니 이전과 다른 새로운 것을 내놓지 않으면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며 “혁신은 위기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