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사채업자 등으로부터 빌린 돈으로 2015년 말 상장기업을 인수한 뒤 이를 공시하지 않았다. 이른바 ‘무자본 인수합병(M&A)’을 해놓고 그 사실을 숨겼다. 그리고는 중국 거대 기업의 자회사로부터 투자를 받았다는 호재를 퍼뜨렸다. 주가는 급등했고 A씨는 곧 주식을 처분했다. 이를 통해 번 부당이익만 120억원. 그의 부정 거래는 지난해 9월 금융감독원에 발각돼 검찰에 고발됐다.

‘작전’으로 통칭되는 주식시장 불공정 거래가 갈수록 교묘해지고 지능화되고 있다. 이 같은 지능형 작전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을 더욱 깊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제 다시 주식이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작전세력…'대박 환상' 헛물만 켜는 개미들
분업화·대형화하는 작전 세력

‘작전주’ 뒤엔 조직화된 세력이 있다. 작전 세력엔 스토리가 될 만한 종목을 엮는 ‘작가’와 정보를 퍼 나르는 정보기술(IT) 전문가 등이 분업체계로 움직인다. 세력 규모도 갈수록 대형화한다. 세력이 기획에서부터 차익을 실현하고 철수할 때까지 2~3년 걸리기도 한다.

투자 규모도 상당하다. 사채업자가 포함돼 있는 경우도 많다. 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가 한 작전주 투자자의 거래 내역을 조사한 결과 작년 한 해 동안 거래 대금이 무려 2조원에 달했다. 추종 세력 자금까지 더하면 수조원의 자금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주식시장이 ‘고인 물’처럼 상하 등락이 적을 때 ‘작전 세력’은 더욱 발호할 수밖에 없다. 금감원에 접수된 주식시장 불공정 거래 혐의 사건은 증시가 조금 활기를 띤 2015년에 151건으로 전년보다 27건(15.2%) 줄었다. 하지만 증시가 다시 침체한 작년에는 208건으로 57건(37.7%) 증가했다.

작전 경로로 SNS 부상

작전 세력은 미리 점찍은 종목을 매수한 뒤 각종 수법을 동원해 주가를 띄운다. 주가가 낮아 작전이 실패해도 타격이 미미한 중소형주가 먹잇감이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주가 부양 수법은 특정 ‘호재’나 ‘테마’ 만들기다.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한 프레젠테이션 자료까지 첨부해 ‘이 종목이 오를 것’이란 소문을 퍼뜨린다. 소문을 유포하는 경로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엔 유명 포털사이트의 증권 관련 게시판·카페·블로그를 활용했다면 최근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오픈채팅방이 주된 경로로 부상하고 있다. 오픈채팅방은 SNS 사용자들이 공통 관심사를 익명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다. ‘트리거스탁’ 등 유명 채팅방은 가입자가 20만명이 넘는다.

신종 매매기법도 도입된다. 여럿이 유통 주식이 적은 일명 ‘품절주’를 대거 매수하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작년 3월 코데즈컴바인이 이 같은 매매기법에 무방비로 노출돼 9거래일 만에 주가가 여섯 배 넘게 오르며 코스닥 시가총액 3위까지 올랐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 자동 매매 시스템을 설치해 주식 1~2주씩을 계속 사고파는 ‘단주 매매’도 성행한다. 강전 금감원 특별조사국장은 “단주 매매는 호가 횟수가 많고 시세 관여 정도가 높아 주가가 잘 움직인다”며 “주가 상승 동력이 주춤해질 때 단주 매매를 통해 개미들 자금을 다시 끌어들이며 2차 상승이 일어난다”고 전했다. 단주 매매를 통한 시세 조종은 불법이다. 다만 일일이 의심스러운 계좌를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에 불법 여부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 이 밖에도 상승세인 종목에 매도 주문의 2~20배에 달하는 매수 주문을 상한가로 내는 ‘상한가 굳히기’ 등의 수법이 작전주를 움직이고 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개미’

이렇게 깔린 판에 개미들이 뛰어들면 주가 상승세에 한층 더 불이 붙는다. 한 번에 크게 벌 수 있다는 환상이 개미들을 유혹한다. 작전인 것을 알면서 투자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한 전업 투자자는 “손실을 많이 본 개미일수록 작전주에 큰돈을 투자해 과거의 손실을 한 번에 만회하려 한다”고 말했다. 작년에 검찰에 고발된 한 투자자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회원들로부터 자금 운용을 일임받아 주식을 매매하며 시세 조종성 주문을 반복적으로 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주가 조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카페 회원들에게 알리기까지 했다. ‘대박 유혹’에 빠져 처벌 위험도 잊은 채 주가 조작 공모 세력으로 가담하고 만 사례다.

작전주는 통상 ‘소문→급등→과열→하락’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개인투자자들은 ‘급등’과 ‘과열’ 국면, 다시 말해 ‘어깨’ 내지 ‘상투’에서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판판이 깨질 수밖에 없는 투자인 셈이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작전’은 몇 개월에 걸쳐 정보를 흘려 가랑비 뿌리듯 추진된다”며 “세력은 주가가 오르면 일시에 주식을 ‘던지고’ 사라지기 때문에 절대로 미확인 정보를 믿고 투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선 테마주도 마찬가지다. 거래소에 따르면 탄핵 정국 직전인 작년 9~11월 가장 큰 폭으로 오른 정치 테마주 16개 종목에 투자한 개인투자자(투자금 500만원 이상)의 92%가량이 손실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력 대선 후보 등장과 지지율 상승에 맞춰 다락같이 오른 테마주 주가는 해당 정치인의 불출마 선언 등이 나오는 순간 폭락세를 면치 못한다.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테마주가 대표적인 경우다.

김진성/김우섭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