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시중금리 상승 가능성에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를 받던 채권형펀드가 여전한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트럼프 리스크’와 ‘탄핵’으로 대변되는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예상보다 금리 상승세가 주춤해서다. 만기가 짧은 ‘단기채’가 인기의 중심에 서 있다.
한물 갔다던 채권형펀드, 인기 여전한 까닭은
◆불어나는 채권형펀드

1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외 채권형펀드 설정액은 104조8542억원으로 집계됐다. 연초(103조9856억원) 이후 8686억원 불어났다. 같은 기간 국내외 주식형펀드가 1조8231억원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공모 채권형펀드는 4142억원 줄었지만 기관투자가와 거액자산가 등 ‘큰손’이 주로 투자하는 사모 채권형펀드가 1조2828억원 늘어나며 증가세를 이끌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해외 시장에서도 뚜렷하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연초 이후 글로벌 채권형펀드로 520억달러에 달하는 자금이 유입됐다.

채권형펀드는 올해 ‘천덕꾸러기’가 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여 금리 상승기에 불리한 대표적인 상품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올해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등이 예고돼 있어 수익률 전망도 어두웠다.

이런 예상을 깨고 채권형펀드는 올 들어서도 인기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연초 주가가 오르자 주식형펀드에 머물러 있던 자금이 차익을 거두고 빠져나와 채권형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다른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 데다 당초 예상보다 국채 금리 상승세가 가파르지 않아서다. 지난해 11월25일 연 1.811%까지 오른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13일 연 1.663%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12월15일 연 2.87%였던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 역시 연 2.7%대로 하락하며 안정을 되찾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고개를 든 데다 트럼프 행정부가 포괄적인 재정 부양에 나설 것이란 기대가 줄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단기금리는 연초에 비해 오히려 떨어진 상황”이라며 “금리가 급등하기보다 하향 안정화할 것이란 예상이 퍼지면서 안전자산인 채권형펀드로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기의 주인공은 ‘단기채’

증권사 은행 등 펀드 판매 창구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한 증권사 직원은 “올해 추천 펀드나 전략 상품에 채권형 상품을 넣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며 “의외로 고객들이 먼저 ‘괜찮은 채권형 상품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해 추천 상품에 추가했다”고 전했다.

운용사들도 새로운 채권형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지난해 말 헤지펀드 운용사 자격을 얻은 교보증권은 새로 선보이는 헤지펀드 2종을 모두 채권형펀드로 설정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역시 지난달 초 채권형 헤지펀드를 내놨다. 맥쿼리자산운용과 DGB자산운용은 지난달 각각 기존 운용하던 ‘맥쿼리다이나믹코리아’와 ‘DGB똑똑단기채’ 펀드에 새 유형(클래스)을 추가했다.

올 들어 인기를 끄는 채권형 상품은 공통점이 있다. 단기채에 투자한다는 점이다. 올 들어 1223억원을 끌어모으며 인기를 얻고 있는 ‘유진챔피언단기채’ 펀드 역시 단기채로 운용된다. 단기채는 잔존 만기(듀레이션)가 4~6개월, 단기국공채는 6~8개월이다. 금리가 상승해도 만기가 짧은 채권은 가격이 크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위험을 회피(헤지)하기 쉽다.

오춘식 유진자산운용 마케팅본부장은 “금리 상승기에도 자산배분 차원에서 일정 부분을 채권에 투자하려는 수요는 늘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보수적인 투자자들은 변동성을 낮추고 안정적인 이자수익으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단기채 상품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