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주식이다] '바닥' 노려 들어왔는데 '지하실'로 추락…조선·해운주에 물린 단타족
“주식투자 2년 만에 4억원이었던 원금이 9000만원으로 줄어들었어요.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도와주십시오.”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주식투자 관련 채팅방에서 만난 한 노신사는 얼마 전 ‘반기문 테마주’를 샀다가 1억원이 넘는 손실을 봤다고 가슴을 쳤다. 그러고는 단숨에 만회할 종목이 있으면 꼭 추천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단숨에’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는 없다. 이미 수많은 투자자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개미 왜 단타 하나

그럼에도 한국의 개인투자자(개미)들은 ‘조급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세계은행(WB)의 국가별 주식거래회전율(주식거래량을 주식 수로 나눈 수치)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한국 투자자의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은 8.0개월로 나타났다. 한국보다 보유 기간이 짧은 국가는 중국(2.5개월) 터키(6.5개월) 미국(7.3개월) 등 3개국에 불과했다.

싱가포르는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이 38.8개월로 한국보다 무려 5배 가까이 길었다. 이 밖에 일본(10.5개월) 독일(14.3개월) 홍콩(18.5개월) 호주(19.0개월) 등 선진국 대부분이 한국보다 투자 기간이 긴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은 개인투자자들이 대부분 펀드 등 간접투자 중심이고 직접 주식매매는 전문 트레이더 수준의 일부 개인만 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주식 보유 기간이 짧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한국 투자자들은 왜 보유 기간이 짧을까. 일부 전문가는 코스피지수가 6년째 ‘장기 박스권’(1850~2100)에 갇혀 있는 국내 증시 환경을 꼽는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부사장은 “박스권 시장에선 주식을 오래 보유해도 예금 수익률을 웃도는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개인투자자가 주식시장의 ‘큰손’이라는 점도 우리나라 투자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유가증권·코스닥시장 전체 거래대금에서 개인투자자 거래대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66.8%에 달했다. 개인투자자 주식 거래비중이 30% 수준인 해외와 비교해 두 배 이상 높다.

◆단타 매매 왜 위험한가

단타 매매가 늘어나면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보다 일회성 이슈를 중심으로 투자하는 양상이 두드러져 비합리적인 투자 행태가 난무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정치테마주가 대표적인 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합리적인 투자가 실종되고 시장이 왜곡되면 결국 주식시장 전체의 신인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장기 투자에 대한 가치가 떨어지고 상장사의 성장성도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최근 5년간 개인투자자들의 순매수 상위 5개 종목의 수익률 분석에서도 나타났듯 개인들의 ‘단타 매매’가 몰린 기업들의 주가 움직임은 낙제점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가 단기 투자로 원하는 수익을 거두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들과는 체급부터가 다르다. 대부분 개인투자자는 기업 및 시장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여건에서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 넉넉한 투자금과 훈련된 인력으로 무장한 간접투자자들과 정면 승부를 할 능력이 안 된다.

때로는 감정에 치우쳐 냉정한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도 단타에 불리하다. 운 좋게 몇 번 수익을 내더라도 한두 종목이 급락해 그동안 번 수익을 대부분 반납하는 개인투자자들이 많다.

‘떨어지는 칼날’을 잡은 뒤 손절매를 하지 못해 투자금을 날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마주옥 한화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은 “금리 환율 유가 등 주식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거시경제의 흐름은 단기간에 바뀌지 않기 때문에 주가도 한번 내리막을 타면 다시 반등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주가의 장기 하락을 단기 하락으로 오판해 저가매수에 나서는 사람들이 큰 낭패를 본다”고 말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조선·해운주라고 했다.

◆상장사도 원하지 않아

개인의 단기 투자 쏠림으로 기업의 성장잠재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이 주주가치를 올리기 위해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늘리면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재원이 줄어들 수 있어서다. 해외 헤지펀드가 국내 투자자들의 조급증에 편승해 기업에 무리한 주주환원책을 요구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지난해 2월 미국계 헤지펀드 SC펀더멘털은 GS홈쇼핑을 상대로 배당을 지금의 두 배가량 늘리고 유통 주식의 10%를 사들여 소각하라는 주주제안을 했다. SC펀더멘털은 삼호개발 경동도시가스 모토닉 등에도 비슷한 제안을 했다.

하지만 이 헤지펀드는 주주친화책에 대한 기대로 주가가 오르면 바로 보유 지분 전량을 팔아치웠다. 이들 헤지펀드는 소액주주들과 연대해 주주총회 표 대결에 나서는 등 기업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상적 경영 활동보다 경영권 방어와 주주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시간과 인력, 비용을 허비하고 있다”고 호소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최만수/김익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