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투자펀드 순자산 90조원 첫 돌파
국내에서 자금을 모아 해외에 투자하는 해외투자펀드의 순자산(펀드가 담고 있는 자산의 현재 가치)이 사상 처음으로 90조원을 넘어섰다. 기관투자가들이 사모펀드를 통해 해외 부동산을 공격적으로 사들인 결과다.

◆기관, 너도나도 해외 투자

2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해외투자펀드 순자산은 90조940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5일 기록한 종전 최고치(88조2460억원)를 한 달 만에 경신했다. 펀드 자금의 대부분은 기관투자가와 자산가들로부터 나왔다. 사모펀드는 투자자를 49명 이하까지 모집할 수 있으며 최소 투자금액이 1억원 이상인 상품이다. 전체 해외투자펀드 순자산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58조220억원이 사모펀드에 집중돼 있다.

자산별로는 부동산펀드의 약진이 눈에 띈다. 지난해 말 13조500억원이었던 해외 부동산펀드의 순자산은 22조870억원으로 불어났다. 1년 사이 10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해외 부동산 관련 상품으로 유입됐다는 얘기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사모펀드를 설정해 해외 부동산을 사들인 뒤 연기금이나 보험사 등에 재판매한 사례가 많다.

한국투자증권은 프랑스 제약사 노바티스 파리법인 사옥을 약 4800억원에 인수하는 등 올해 해외 부동산 거래를 5건이나 성사시켰다. 새로 설정된 펀드들의 순자산을 합하면 2조원이 넘는다. 일찌감치 해외 부동산과 호텔 투자를 시작한 미래에셋그룹은 사모뿐 아니라 공모시장에서도 해외 부동산펀드를 팔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는 프라임 오피스 빌딩 4개 동에 투자하기 위해 조성한 3000억원 규모 공모펀드는 사전예약에서 ‘완판’(판매 물량 소진)됐다.

실물자산과 매출채권, 지식재산권 등에 투자하는 특별자산펀드로도 같은 기간 3조9530억원이 들어왔다. 특히 항공기에 투자하는 펀드들의 순자산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메리츠종금증권이 선보인 1조원 규모의 항공기 사모펀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주식형펀드 시장은 여전히 ‘꽁꽁’

과거 해외투자펀드의 중심축이었던 주식형펀드는 매년 시장 규모가 쪼그라들고 있다. 지난해 말 15조1910억원이던 해외 주식형펀드의 순자산은 14조9460억원으로 1년 사이 3000억원 가까이 줄었다. 공모로 발행된 해외 주식형펀드만 따지면 같은 기간 순자산 감소폭이 5290억원에 달한다.

투자금 3000만원 한도에서 세금을 물리지 않는 ‘비과세해외주식형펀드’도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이 제도가 처음 시작된 2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비과세 펀드로 들어온 자금은 9655억원이다. 1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유입됐지만 해외 주식형펀드의 순자산은 오히려 감소했다. 비과세 해외 주식형펀드에 새로 가입한 투자자보다 일반 해외 주식형펀드를 해지한 투자자가 더 많았다는 얘기다. 기온창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부장은 “해외 주식형펀드로 큰 손실을 본 경험이 있는 투자자가 많다 보니 비슷한 유형의 신상품에 가입하라는 권유가 먹혀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해외투자펀드의 첫 전성기는 해외 주식으로 얻은 수익에 한시적으로 세금을 물리지 않는 정책을 처음으로 선보였던 2007년이었다. 당시 해외 펀드 순자산은 87조8030억원(2007년 12월6일)에 달했으며 90% 이상이 공모 주식형펀드였다. 하지만 2008년 중국 증시 폭락으로 순자산이 40조원 선까지 급감했다가 2011년부터 기관 참여에 힘입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송형석/김대훈/이동훈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