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린 '550조 연기금'

대체투자위서 막판 부결

금융주선사 NH증권 '멘붕'
4개월 끌더니 투자 접어…특정종교 논란 의식한 듯
업계선 "의외의 결정"

깊어지는 '투자 결정 장애'
검찰수사로 기금 운용 위축…"논란 예상되는 투자 피하자"
항공기펀드 등도 막판 포기
마켓인사이트 12월14일 오후 3시48분

550조원의 국민 노후 자산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기금 운용역들의 투자 활동이 급속도로 움츠러들고 있다. 지난해 소신을 갖고 찬성 의결권을 행사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이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의혹으로 번지자 조금이라도 논란이 예상되는 투자 건은 일단 배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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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인사이트] '최순실 트라우마'에 몸 사리나…국민연금, 파크원 2천억 투자 포기

◆왜 부결됐나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전날 대체투자위원회에서 서울 여의도의 파크원(Parc1) 개발 사업에 대한 투자 안을 부결시켰다. 국민연금이 선순위 1000억원, 중순위 1000억원씩 총 2000억원을 투자하는 안건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금융주선사인 NH투자증권엔 ‘초비상’이 걸렸다. 김원규 사장이 주재한 대책 회의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NH투자증권은 지난 4개월 동안 국민연금 측이 요구한 까다로운 투자 조건들을 대부분 수용해 안건 통과를 자신하고 있었다. 여기에 시중은행, 보험사, 공제회 등 국내 34개 금융회사들이 이미 2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파크원에 투자하기로 내부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다.

NH투자증권은 총 사업비 2조6000억원 중 시행사인 Y22프로젝트금융투자(PFV)가 출자한 자금 5000억원을 제외한 2조1000억원을 금융권에서 끌어모은다는 계획을 세웠다. 파크원 사업은 통일교재단이 소유한 여의도의 주차장 터(4만6000㎡)를 99년간 빌려 지상 72층과 56층 오피스 빌딩 2개동, 호텔, 복합쇼핑몰 등을 짓는 초대형 복합개발 사업이다. 2007년 착공했으나 통일교재단과 시행사 간 소송이 불거지면서 중단됐지만 2014년 대법원 판결 이후 다시 추진되고 있다.

국민연금이 투자 검토를 중단한 주된 이유도 통일교재단으로부터 토지를 임대하는 데 따르는 ‘종교 리스크’가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최근 여의도 오피스 빌딩의 공실률이 올라가고 있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부결할 거라면 검토 초기 단계에서 결정했어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민연금 내부에서조차 “국내 대표 기관투자가에 어울리지 않는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 측에 제시된 투자 조건은 파크원의 오피스 빌딩 가치가 3.3㎡당 900만원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로 돼 있었다. 이는 파크원과 인접한 서울국제금융센터(IFC 서울)가 지난달 팔린 가격(3.3㎡당 1800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왜 몸 사리나

IB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이 수개월 동안 검토해온 투자 안을 마지막 순간에 보류·포기하는 ‘투자 결정 장애’가 크게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올해 외부에 알려진 투자 부결 사례만 하더라도 △미래에셋대우의 항공기 펀드 △프랑스 니스공항 경영권 공동 인수 △딜라이브 채무 재조정안 등 3건이 더 있다.

이런 사례가 잦아지면 좋은 투자 건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진다. 특히 중소형 운용사들은 국민연금의 투자가 무산될 경우 투자 검토 단계에서 지출한 실사 및 자문 비용을 고스란히 자비로 떠안아야 한다. 국내 모 사모펀드(PEF)의 한 대표는 “국민연금의 투자 결정에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약해지면서 투자 제안서를 들고가기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투자 결정이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정치적 문제로 자주 제기되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투자는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 내부의 전언이다. 이번 파크원 투자 부결 건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의 한 관계자는 “검찰 수사 외에도 내년 2월 전주 이전을 앞두고 이직 행렬이 이어지면서 실무자들이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좌동욱/김대훈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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