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 코드 연내 도입…경제민주화 법안 줄줄이 대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국민연금이 찬성한 것을 놓고 적절성 논란이 다시 일고 있는 가운데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 행동주의'가 힘 받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주주의 경영권을 견제하기 위해 기관 투자자와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강화하는 제도와 법안들이 시행될 예정이거나 도입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우선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자율 지침을 담은 스튜어드십 코드가 이르면 연내 도입될 예정이다.

이 제도는 기관투자자가 자금 수탁자로서 고객이나 수익자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책임을 이행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의결권 행사 절차와 기준을 마련해 공개토록 하고, 의결권 행사 내역과 이유를 적절한 방식으로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관투자자들이 투자기업 주주총회에서 안건에 찬성표만 던지는 '거수기' 역할에서 벗어나 사외이사 및 감사 후보 추천, 주주 제안, 이사 해임청구 등 주주권을 적극 행사토록 한다는 취지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국민연금이 합병 비율을 더 유리하게 조정하도록 요구해 국민 노후자금의 투자 수익 제고에 힘썼어야 했다는 지적과 맥을 같이 한다.

전날까지 제정안에 대한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받은 기업지배구조원은 이를 반영한 최종 스튜어드십 코드를 연내 공개하고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3월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기관투자자의 총 의결권 행사 건수(1만8천234건) 중 96.4%(1만7천573건)가 찬성 표였다.

반대와 중립은 각각 2.2%, 1.4%에 그쳤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기관 투자자들은 그간 투자기업의 갑작스러운 의사결정으로 손실이 발생했을 때 피해를 감수하고 소극적인 보유 주식 매도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의결권 사용도 극히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향후 재벌기업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기관 투자자들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근거로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 대표가 대표발의해 놓은 상법 개정안도 주주 행동주의를 활성화할 법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개정안의 핵심은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 자회사 경영진의 부정행위가 있을 때 모회사 발행주식의 1% 이상을 가진 주주들이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사를 다른 이사들과는 분리해 선임,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높이도록 했다.

전자투표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해 소액주주들이 원격으로 의결권을 행사토록 하는 방안도 포함했다.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 등이 제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자사주를 이용해 오너 일가가 지배력을 높이는 데 제동을 거는 내용을 담았다.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국내 대기업 오너들은 그간 자사주를 지배구조 강화에 활용해 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행 상법에 따르면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회사를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자사주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자사주의 의결권을 살릴 수 있다.

이 때문에 개정안은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가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회사를 분할할 경우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고 있다.

장화탁 동부증권 연구원은 "기업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해 내년 일제히 시행될 것"이라며 주주 행동주의가 내년도 자산시장의 키워드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분쟁과 조정 과정을 글로벌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주시하고 있을 것"이라며 기업지배구조 관련 새 제도의 잇단 시행을 계기로 글로벌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sj997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