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2020년까지 발생한 계약서비스마진(CSM)에 대해 회계상 부채가 아니라 자본(잉여금)으로 분류할 수 있도록 IFRS17 기준서 내용을 수정하기로 한 것은 ‘대반전’으로 평가할 만하다는 지적이다. 삼성 교보 한화 등 국내 생명보험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2021년 IFRS17 시행에 따른 부채 폭증 부담에서 벗어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현재 감독당국이 마련 중인 신지급여력제도에서 CSM을 전액 가용자본으로 인정하면 보험업계 전체 가용자본은 현재보다 10조~20조원 늘어나고 지급여력(RBC)비율도 250% 이상을 유지할 수 있을 전망이다.
[IFRS17 부채기준 완화] 부채 회계의 '대반전'…보험사 가용자본 오히려 10조 이상 증가
◆보험연합군의 설득

CSM은 보험계약 시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의 현재 가치를 뜻한다. 당초 IASB는 IFRS17에서 CSM을 모두 부채로 인식하도록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IFRS17 시행 이전인 2020년까지 발생한 CSM은 부채로 인식하지 않고, 장래손실과 상계해서 회계상 잉여금으로 분류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보험사 자본이 10조원인데 장래손실이 10조원, 장래이익이 15조원 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2021년 IFRS17 시행 시점에 총 자본은 15조원(자본+장래이익-장래손실)이 된다. 반면 IASB 원안대로 하면 총 자본은 0(자본-장래손실)이 된다.

IASB가 CSM을 자본으로 전환하는 길을 열어준 것은 IFRS17 최종 문구 수정작업(필드테스트)에 참여한 글로벌 보험사들이 공고한 협력관계를 구축, IASB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IASB ‘내부보고서(AP02A)’에 따르면 IFRS17의 최종 문구 수정작업에는 한국의 삼성생명을 비롯해 AIA그룹, 알리안츠그룹, AXA그룹, 중국생명보험, 그레이트-웨스트 라이프코, HSBC, 메이지야스다생명, 푸르덴셜PLC 등 글로벌 금융사 12곳이 참여했다. 이들은 IASB가 IFRS17 시행 시기를 늦출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기준서 내용을 수정하기 위해 집요한 설득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IFRS17의 영향이 가장 심각한 한국 보험업계가 ‘보험 연합군’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지급여력제도가 관건

보험사들은 우선 IASB의 이번 결정을 크게 반기고 있다. 현재 금융당국이 준비 중인 신지급여력제도에서 자본으로 전환한 CSM을 전액 가용자본으로 인정하면 보험사 건전성 평가 지표인 RBC비율이 크게 개선되기 때문이다.

국내 보험 및 회계업계 분석에 따르면 CSM의 자본 전환 허용에 따라 국내 생보사 RBC비율은 250~300%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당초 IFRS17의 원안대로 따랐을 경우 국내 생보사의 RBC비율이 100% 초반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던 점을 감안하면 큰 진전이다. 과거부터 글로벌 기준에 맞춰 부채 관리를 해온 외국계 보험사들은 오히려 RBC비율이 증가할 전망이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RBC비율이 100%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던 삼성·한화·교보·흥국·DGB·KDB·알리안츠·동양생명 등은 RBC비율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며 “추가 자본 확충이 없을 경우 퇴출 대상이 되는 생보사는 한 곳뿐”이라고 말했다.

아직 감독당국의 신지급여력제도가 확정되지 않은 점을 감안해 지나친 낙관론은 금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IFRS17에 따라 자본으로 전환한 CSM의 가용자본 인정 비율을 어느 수준으로 정할지는 감독회계에서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이지훈/박신영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