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이 운용조직 개편에 들어간 것은 세계 3위 연기금으로 불어난 기금의 덩치에 걸맞은 운용조직을 갖추기 위해서다. 정부가 2008년부터 추진해온 기금운용본부 독립 등 지배구조 개편작업이 번번이 무산되면서 차선책이 필요한 터였다.
[단독] '100조원 시대' 만들어진 기금운용 조직, 1000조에 걸맞게 개편
◆얼마나 커졌나

국내외 지역과 자산 유형별 실·팀장 체제를 기본으로 하는 현행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조직은 2007년 1월 갖춰졌다. 필요할 때마다 손질했지만 기본 골격은 약 10년간 그대로 유지됐다.

그동안 기금운용본부가 운용하는 자산의 규모와 질은 크게 달라졌다. 기금 규모는 2006년 말 190조원에서 지난해 말 512조원으로 2.7배로 불어난 데 이어 올 들어선 550조원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운용 인력은 61명에서 220명으로 증가했다. 한 민간 운용사 사장은 “국내 중형급 운용사가 글로벌 대형 운용사로 바뀐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해외 자산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2006년 말 국민연금이 보유한 해외 자산은 18조원으로 전체 자산의 9.3%에 불과했다. 작년 말에는 일곱 배인 120조원(전체 자산의 24%)으로 증가했다. 기금 규모는 더 가파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6년 후인 2022년에는 1000조원 수준에 달한다. “100조원대에 구성된 기금운용조직이 1000조원 규모 기금을 굴리는 것은 맞지 않다”(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는 게 국민연금 입장이다.
국민연금공단이 자산 550조원을 굴리는 기금운용본부 조직을 수술대에 올렸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있는 서울 논현동 국민연금 강남사옥에 부서 안내판이 걸려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국민연금공단이 자산 550조원을 굴리는 기금운용본부 조직을 수술대에 올렸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있는 서울 논현동 국민연금 강남사옥에 부서 안내판이 걸려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부CIO의 역할은

기금운용본부는 기금운용본부장을 중심으로 7개실과 1개 센터(리스크관리센터), 3개 해외 사무소로 짜여 있다. 국민연금은 실장들을 총괄하는 부(副)최고투자책임자(CIO)로 퍼블릭부문장과 프라이빗부문장을 새로 도입할 계획이다. 퍼블릭부문장은 국내외 주식과 채권 운용을, 프라이빗부문장은 국내외 대체자산 운용을 총괄하는 자리다. 내부 실장급을 승진 기용하는 게 원칙이다.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은 “기금운용본부장에게 쏠린 권한과 책임을 아래로 분산해야 한다”며 문 이사장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출신 부문장이 세세한 투자 실무를 챙기고 기금운용본부장은 기금 운용의 큰 방향과 자산 배분에 집중하는 방식의 역할 분담이다.

성격이 비슷한 자산을 통합 운용하고 실무 조직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도 부문장이 필요하다.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수평적인 관계로 구성된 실장들 사이에 의견 차가 생겼을 때 이를 조율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국민연금으로선 조직개편이 내년 2월 전북 전주 이전을 앞둔 운용역들의 사기 진작책이 될 수 있다. 조직 개편안이 확정되면 기금운용본부에는 큰 폭의 인사가 있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대체투자 통합 운용

국내외 대체자산 조직의 통합은 국내외 투자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실을 반영한 조치다. 국민연금은 국내외 투자조직을 합친 뒤 부동산, 인프라, 사모주식 등 자산군별로 조직을 나눌 계획이다. 이찬우 국민대 교수(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는 “국내 운용사가 해외 대체투자를 하거나 해외 운용사가 국내 대체투자를 할 경우 담당 조직이 분명치 않은 ‘그레이존(gray zone)’이 발생한다”며 “자산별 운용 전문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도 통합 운용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만 국내 부동산, 사모펀드(PEF), 인프라 운용사들은 국민연금 위탁운용액이 줄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 조직이 국내외 투자건을 함께 검토하면 투자 대상이 다양하고 오랜 기간 투자 노하우가 축적된 해외 운용사를 우선할 수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전 금융위원장·국민연금공단이사장)는 “조직의 안정성과 장기 운용 역량을 제고하는 효과가 기대된다”며 “전주 이전을 앞두고 동요하는 실무 운용역에게 비전을 제시한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좌동욱/유창재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