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 연구원들이 발간한 보고서는 2만여건이다. 하루 평균 400편이 넘는 보고서가 쏟아져 나온다. 한 쪽짜리도 있지만 수백 쪽, 소책자 분량의 보고서도 있다. 빼곡한 숫자와 전문용어 속 투자의견은 ‘매수’ 일색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사느냐 파느냐’를 판단하는 잣대보다 숫자를 확인하고 흐름을 파악하는 용도로 보고서를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주식투자 어찌하오리까 (16)] 증권사 보고서 활용법
◆매도 의견 단 한 건

1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발간된 국내 증권사 보고서 가운데 ‘매수’ 투자의견은 전체의 80.35%에 달했다. ‘매도’ 보고서는 단 한 건뿐이었다. ‘비중축소’ 의견(24건)까지 합해도 0.12%에 불과했다. ‘투자의견 없음’이 10.6%, ‘중립’ 의견이 8.32%를 차지했다. “잘 모르겠다”는 의견 제시가 사실상 ‘팔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통상적으로 투자의견을 바꾸기 전 목표주가 조정이 먼저 이뤄진다. 목표가를 낮추는 것은 1차 하락 경고인 셈이다. 목표주가를 내려 잡아도 투자의견은 ‘매수’를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은 목표주가에 이어 투자의견까지 한 단계 낮아지면 단기 조정이 불가피한 종목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지난달 21일 하나금융투자가 보고서를 내놓은 인터파크가 대표적이다. ‘당분간 반전은 쉽지 않다’는 제목으로 목표주가는 1만8000원에서 1만4000원으로, 투자의견은 ‘매수’에서 ‘중립’으로 바꿨다. 이미 올 들어 주가가 40% 넘게 빠진 뒤였지만 8%가량 더 하락했다.

투자의견처럼 보고서 내용도 간접적인 표현이 많다. 증권사 처지에서는 분석 대상 기업들이 영업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에 직설적인 표현으로 불편한 관계가 되길 꺼린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제목만 봐서는 상황이 좋다는 것인지 나쁘다는 것인지 모호한 보고서들이 있다. 통상 ‘내실을 다지는 중’이나 ‘한 박자 쉬어가기’ ‘긴 호흡으로 접근’ 등의 제목들은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성장이 멈춘 상태거나 주가에 동력이 될 만한 상승 모멘텀이 없음을 돌려 표현한 것이다. ‘내년 재도약 기대’ ‘올해보다 밝을 내년’ 등 중장기 전망을 언급하는 종목들도 많은 경우 단기 실적 부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조회수로 기관의 관심 파악

매일 수백 건씩 나오는 보고서를 어떻게 선별하고 무슨 숫자를 봐야 하는지도 중요하다. 보고서를 제공하는 업체들의 조회수 상위에 오른 글들의 제목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사를 파악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조회수 상위 10개 보고서 제목을 보면 기관투자가를 비롯한 시장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며 “올해 많이 빠졌던 기관의 수급이 향후 주식시장에 미칠 영향이 큰 만큼 더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 조회수가 기관투자가들의 관심과 수급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에프앤가이드에서 올해 조회수 2000회 이상 상위 보고서들의 제목에는 ‘지주회사’ ‘지배구조’ ‘바이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플렉시블’ 등이 공통 열쇠말로 꼽혔다.

한 운용사 임원은 “보고서도 의견이 아니라 숫자를 중심으로 본다”고 말했다. 눈높이가 올라간 종목이라도 주가수익비율(PER)이 높아져 목표주가를 올린 종목은 오히려 매도 시점을 가늠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 평균이나 업계 평균 PER이 올라가면서 목표주가를 높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적 비교 시점도 업종에 따라 달리해야 한다. 가격 변동이 거의 없고 수요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내수 소비재는 전년 동기 대비로, 수요 예측이 어렵고 업황에 따라 변동이 심한 정보기술(IT) 분야는 전분기 대비로 숫자를 비교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증권사가 제시하는 투자의견을 오히려 반대로 볼 것을 강조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이 80%가량 일치하면 그때가 팔아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호재 등에 대한 기대가 다 반영돼 주가도 과열 상태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서울 시내면세점 선정 뒤 급등한 호텔신라나 대규모 수출 계약 이후 주요 파이프라인에 대해 과대평가를 한 한미약품 등이 사례로 꼽힌다.

윤정현/이현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