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부자들, 전단채·리자드형 ELS 등에 '뭉칫돈'
자산가들의 재테크 투자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서울 강남 재건축 등 부동산 열풍에 언제든 투자할 수 있는 ‘실탄’을 준비해두고,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대비해 리스크(위험)를 낮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단기 투자 상품인 ‘전자단기사채(전단채)’나 손실 위험을 낮춘 ‘리자드(lizard·도마뱀)형 주가연계증권(ELS)’, 공모주 등에 돈이 몰리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주요 증권사(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의 전단채 판매액은 이날 기준 9조503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투자e단기채’ 등 전단채 투자 펀드 판매액도 올 들어 6930억원에 달한다.

전단채는 온라인으로 발행하는 만기 1년 미만의 단기 채권이다. 지금까지 전단채는 법인이나 기관이 단기로 자금을 굴릴 때 이용됐다. 최소 가입 금액이 1억원으로 일반인에겐 진입 장벽이 높은 데다 ELS 등과 비교하면 수익률(2~4%)이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

전단채에 대한 시선이 달리진 건 저금리 상황에 갈 곳을 잃은 대기자금이 늘어나면서다. 예금이나 머니마켓펀드(MMF)에 돈을 넣느니 만기가 보통 3개월 정도로 짧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전단채에 돈을 넣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문윤정 신한금융투자 대치센트레빌지점 프라이빗뱅커(PB)는 “최근 부동산 열풍이 불면서 빠르게 현금화할 수 있는 재테크 수단을 찾는 고객이 늘었다”며 “3개월마다 원금을 찾을 수 있다는 매력에 전단채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원금손실 위험을 낮추고 상환 기간은 앞당긴 리자드형 ELS도 인기다. 신한금융투자가 지난 5월부터 판매한 리자드형 ELS 판매액은 31일 기준 5718억원에 달한다. 이 회사의 올해 ELS 판매액(2조9395억원)의 19.45%다. 업계에선 전체 리자드형 ELS 판매 비중이 연초 5% 이하에서 최근 20% 수준까지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리자드형은 하락장에서 수익을 일정 부분 포기하고, 원금을 최대한 회수하는 방식으로 설계된 상품이다. 도마뱀이 막다른 길에 몰리면 제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모습에서 착안했다. 일반적인 ELS 상품은 1차 조기 상환 시점에 기초자산 지수가 기준점(보통 80~85%) 밑으로 떨어질 경우 조기 상환을 받을 수 없다. 주가가 낮은 수준을 지속하면 불안감 속에 3년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리자드형은 상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도 녹인(보통 55~60%)에 진입하지만 않았다면 약속한 수익률의 절반(3%)만 받고 조기 상환할 수 있다.

공모주 투자를 위한 대기자금도 늘고 있다. 문경훈 현대증권 용산WMC PB팀장은 “높은 수익률을 낸 삼성SDS에 이어 삼성그룹으로는 2년 만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신규 상장할 예정”이라며 “청약 자금 마련을 위해 신규 투자를 줄이는 자산가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