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깊어지는 삼성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전자에 회사 분할과 대규모 배당을 요구해  삼성 경영진이 고민에 빠졌다. 연합뉴스
고민 깊어지는 삼성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전자에 회사 분할과 대규모 배당을 요구해 삼성 경영진이 고민에 빠졌다. 연합뉴스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삼성전자에 대한 공격은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할 때와는 달랐다. 작년에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확보한 뒤 싸움을 시작했지만 이번엔 삼성전자 주식의 0.62%만 갖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오너 경영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이번엔 오히려 적극 지지했다. 계열사로 내세운 블레이크, 포터 등의 펀드도 생소하다. 삼성에 대한 2차 공격에 나선 엘리엇의 노림수를 정리한다.

① 블레이크·포터캐피털의 정체는

엘리엇은 지난 5일 삼성전자 이사회에 서한을 보낸 주체로 계열회사인 블레이크캐피털과 포터캐피털을 내세웠다. 삼성과 업계에선 이 두 개 펀드가 지난 4월 말 설립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때부터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태스크포스(TF)로 보인다”며 “지난해 삼성물산 공격 때도 계열사를 내세웠다”고 말했다.

따라서 엘리엇은 오는 27일로 예정된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권은 행사할 수 없다. 주주제안권을 행사하려면 △상법상 0.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해야 하고 △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하며 △주총 6주 전 의견을 서면으로 제출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5일 서한을 보낸 것은 주총 전 자신들의 ‘데뷔’를 알리기 위한 것 같다”며 “앞으로 다양한 액션을 취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에 2차 공세 나선 엘리엇] '1차 공격' 실패했던 엘리엇 "오너 경영 보장할테니 배당 더 해라"
② 배당 요구액이 30조원인 이유는

엘리엇 측은 설명자료를 통해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 77조원은 주당 54만원, 총 자본의 32%에 해당한다”며 “이는 경쟁사들과 비교할 때 너무 높으며 주주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30조원의 특별 현금배당을 요구했다.

자본시장 전문가는 “77조원에 매년 삼성전자로 유입되는 약 20조원의 신규 자금을 고려해 배당 요구액을 산출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77조원에 20조원을 더한 97조원에서 30조원을 빼도 충분한 현금이 남는 만큼 “기업의 미래를 갉아먹는 헤지펀드의 무리한 주장”이라는 공격을 피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배당 요구액 30조원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액수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단 던져본 숫자로 보인다”며 “이를 기반으로 협상해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③ 대주주 친화적인 요구를 한 배경은

엘리엇은 이번 제안에서 삼성의 오너 경영을 우호적으로 평가했다. 자신들의 요구를 통해 “창업주 가족의 지배 지분을 유지하는 동시에 투명한 기업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들이 제안한 지배구조 개편안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에 유리한 구조다.

이는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놓고 벌인 ‘1차전’에서의 교훈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당시 엘리엇은 합병은 ‘오너가의 지분 승계를 위한 것’이라며 오너 경영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한 경영학 전문가는 “당시 한국에서 오너 경영자가 갖는 영웅적 위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며 “오너 경영의 장점도 분명한 만큼 이 부분을 인정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배당 등을 챙기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④ 왜 지금 요구했나

헤지펀드들은 주로 정보기술(IT) 기업의 주가가 하락할 때를 공격 기회로 삼는다.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논리를 내세워 배당 확대 등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헤지펀드계 거물인 칼 아이칸은 지난해 애플과 넷플릭스 주가가 하락했을 때를 노려 공격에 들어갔다. 삼성의 경우 갤럭시노트7 사태로 주가가 주춤한 틈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 전문가는 “현재 악재가 있지만 3차원(3D) 낸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덕분에 전망은 매력적”이라며 “삼성전자 주식을 싸게 살 기회로 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배구조 개편과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임박 시기를 노린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시장에서는 내년 대통령 선거 전에 삼성이 지배구조 개편을 끝낼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오는 27일 주총에서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오를 예정으로 경영권 승계 수순을 밟고 있다.

⑤ 삼성이 거부하면 어떻게 나올까

엘리엇은 삼성전자의 지분 0.62%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크지 않은 숫자 같지만,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상법 363조에 따르면 0.62%의 주식보유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주제안 외에도 이사해임청구, 회계장부열람, 위법행위유지청구(위법행위를 못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 대표소송제기를 할 수 있다.

즉 삼성이 주주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부회장을 비롯한 이사의 해임 청구를 하거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삼성의 각종 경영활동에 훼방을 놓을 수 있는 충분한 지분이다. 이상헌 연구원은 “삼성전자 지분 0.5%면 시가로 1조원을 넘는다”며 “삼성이 엘리엇의 제안을 무조건 거절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윤선/노경목/좌동욱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