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전자에 분사와 특별배당을 요구하는 주주 행동에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엘리엇 측의 이번 움직임은 오는 2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안건이 상정되는 삼성전자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불거져 나와 더욱 시선을 끈다.

시장 안팎에선 엘리엇의 요구가 어느 정도 수용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소식이 알려진 6일 오전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주요 삼성그룹주는 2∼4%가량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은 엘리엇의 이번 제안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는 방증이다.

엘리엇은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며 삼성그룹과 날 선 공방을 벌인 바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그룹이 한때 대립각을 세웠던 엘리엇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지만,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이들 요구를 호재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 엘리엇, 삼성전자에 주주제안…셈법은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전자 이사회에 요구한 것은 삼성전자 분사와 주주에 대한 특별배당, 나스닥시장 상장 등으로 요약된다.

증시 전문가들은 엘리엇이 요구한 방안들은 모두 삼성전자의 저평가 해소와 투자자 신뢰 강화, 주주 친화적인 방안과 맞물려 있다고 보고 있다.

즉 주가 상승과 배당 확대를 통해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번 주주 행동에 나선 엘리엇 산하 2개 펀드가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은 0.62%이다.

엘리엇이 요구한 지배구조 개편과 배당 확대 문제는 그동안 시장에서도 꾸준히 제기돼 온 사안이다.

엘리엇이 제안한 지배구조 개편 방안도 그간 거론돼온 시나리오 중 하나다.

엘리엇은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누고 미국의 나스닥에 각각 상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스마트폰사업, 반도체사업, 가전사업 등으로 나뉜 현 구조는 저평가를 초래하므로 기업가치를 높이려면 분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불투명한 지배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지주회사를 삼성물산과 합병할 수 있는지도 검토하고 독립적인 3명의 이사를 이사회에 추가하라고 요청했다.

삼성전자가 주주들을 위해 현재 잉여현금흐름의 75%에 해당하는 30조원을 특별배당으로 주주들에게 돌려주라고도 했다.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 이 요구가 관철된다면 엘리엇 측은 단순 계산으로 1천800억원을 특별배당으로 가져갈 수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의 요구 사항은 모두 삼성전자의 주가 상승을 끌어낼 수 있는 사안"이라며 "삼성전자 주가가 지배구조 이슈로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하고 지분 가치를 높이고 배당을 늘리기 위해 주주제안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엘리엇은 주주로서 보유 지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주주 행동에 나선 것으로 봐야 한다"며 "삼성전자 측에서 모든 요구 사안을 수용하기는 어렵겠으나, 배당과 주가 상승 등 일부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엘리엇은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반대 움직임을 펼쳐 적지 않은 시세차익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 적대적 관계에서 백기사로…엘리엇·삼성 윈윈할까

엘리엇의 이번 주주제안에 대해선 적대적 관계였던 삼성 내부에서도 비교적 동조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배구조 개편 등에 관한 엘리엇의 이번 요구는 오히려 삼성 입장에선 득이 될 내용이 많다고 보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엘리엇이 작년 삼성물산 건을 놓고 적대적이었다면 이번에는 친화적(프랜들리)인 전략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며 "엘리엇의 제안 중 가장 중요한 지주회사 전환 건은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서 삼성이 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거칠 것으로 예상하는 대부분이 엘리엇의 제안에 포함됐다"며 "삼성이 스스로 내세우기 힘든 삼성전자의 인적 분할과 지주사 전환 명분을 세워준 격"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 저평가 해소, 순화출자·금산분리 이슈를 통한 지배구조 투명성, 오너 일가의 지배력 확대라는 명분이 된다"며 "양쪽 갈등 요인이 되기보다 지배구조 개편의 실마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다만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의 걸림돌로 오너 일가가 현재 삼성전자 보유 지분이 너무 낮아 현실화하려면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점이 거론된다.

정선섭 대표는 "순수 지주회사를 두려면 계열사가 아닌 오너가 직접 지분을 보유해 지배해야 하는데, 현재 이재용 부회장 측에선 보유 지분이 낮아 추진하기 쉽지 않다"며 "회사가 자칫 지분 50% 정도를 보유한 외국인 손에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교수는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요건을 갖추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주식을 사고팔아야 하고 회사를 분할하고 합병하는 과정에서 꽤 많은 돈이 들어가는 작업이 필요한데, 전자 쪽 지주회사를 만드는 것은 훨씬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과거 LG그룹은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데 3년이 걸렸다.

배당 확대 건도 엘리엇이 요구한 30조원 현금 특별배당은 어렵지만, 액수 조정이나 방식 반경 등의 형태로 어느 정도 수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선우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이번 엘리엇 제안으로 삼성전자가 주주환원 정책을 가속하면서 견조한 주가 상승도 동반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상헌 연구원은 "고배당 부분은 과도한 수준이라 삼성전자가 들어주기 힘들지만, 상징적으로 고배당을 요구하는 선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김현정 기자 indig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