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의 구조조정 차원에서 추진된 하이투자증권 매각 작업이 표류하고 있다.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던 사모펀드(PEF) 인베스투스글로벌이 인수의사를 거둬들이면서 LIG투자증권 홀로 인수후보자로 남았다.

시장에선 현대중공업이 하이투자증권을 헐값에 팔아야 할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 아니어서 제값을 받지 못할 바에야 아예 매각 계획을 보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매각주관사인 EY한영회계법인에 인수의향서(LOI)를 냈던 인베스투스글로벌이 인수전에서 발을 빼겠다고 전날 주관사 측에 통보했다.

김재록 인베스투스글로벌 대표는 "대만계 KGI증권을 전략적 투자자(SI)로 유치하려 했으나 KGI증권이 결국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하이투자증권은 캡티브 마켓(계열사 시장)에 의존하는 회사"라며 인수의향을 철회한 이유를 설명했다.

하이투자증권의 강점인 퇴직연금 사업의 대부분이 현대중공업그룹 물량인데, KGI는 매각 후에 이 물량을 유지할 가능성이 낮다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인베스투스글로벌이 빠짐에 따라 하이투자증권 인수전에는 사실상 LIG투자증권만 남게 됐다.

그러나 LIG투자증권의 인수 의지도 강하지 않다.

LIG투자증권 고위 관계자는 "지금은 하이투자증권 상황을 파악하는 단계"라며 향후 실사 등을 거쳐 인수합병할지, 사모펀드(PEF) 지위로 투자할지 등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올해 5월 사모펀드인 케이프인베스트먼트에 넘어간 LIG투자증권은 PEF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런 LIG투자증권의 소극적인 움직임에 매각사 측은 "적정 가격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LIG투자증권도 "기업에 맞는 적정 가격을 써낼 것"이라며 무리하게 인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원하는 가격에 하이투자증권을 인수할 후보가 나타나지 않으면 매각을 보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입장에선 손해를 보면서까지 낮은 가격으로 팔 만큼 상황이 긴박하지 않기 때문에 매각 작업을 늦출 수 있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번 매각 작업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마땅한 자금력을 갖춘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매각을 보류할 가능성이 크다"며 "현대중공업의 선택만 남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론 매각사 측이 시한을 정해놓지 않고 인수의향서(LOI)를 받겠다고 한 만큼 새로운 인수후보가 나타날 여지는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현대중공업그룹이 2008년 CJ투자증권을 인수해 사명을 바꾼 회사다.

현대중공업이 인수 이후 세 차례의 유상증자 등을 통해 쏟아부은 돈이 1조1천억원에 달한다.

현대중공업이 계열인 현대미포조선을 통해 보유한 하이투자증권 지분의 장부가격은 8천261억원이다.

장부가 수준으로만 팔면 성공적인 매각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가운데 시장에서 예상하는 가격대는 5천~6천억원선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시장에서 거론되는 가격에 하이투자증권을 매각하면 결국 투자손실을 보는 셈이 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을 통해 보유한 하이투자증권 지분(85.3%)을 연내 매각하기 위해 지난 7월 주관사로 EY한영회계법인을 선정하고 투자안내서(티저)를 발송했다.

현대미포조선의 최대주주는 43% 지분을 가진 현대삼호중공업이고, 현대중공업은 현대삼호중공업 최대주주로 9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현정 기자 khj9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