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산유량 1, 2위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저(低)유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상호 협력하기로 합의하면서 정유주와 원유 관련 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연말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유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유값이 배럴당 40~50달러의 박스권에서 벗어나면서 ‘제2의 원유 랠리’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제유가 반등 조짐…정유주 불붙을까
◆“원유값 55달러까지 오를 것”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5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부왕세자가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원유시장을 공동으로 감시하는 한편 시장 안정화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이 알려진 뒤 두바이유는 6.16% 급등해 배럴당 44달러를 넘어섰고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원유(WTI)도 각각 1.71%, 1.64% 올랐다. 두바이유는 올초 25달러대에서 48달러대까지 오르며 상승 랠리를 펼쳤지만 지난달 2일 38.68달러까지 하락해 숨을 고른 뒤 다시 14.5% 오르며 반등하고 있다.

미국의 9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낮아진 것도 원유값 강세에 힘을 보태고 있다. 국제 유가는 일반적으로 달러 가치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미국의 금리 인상은 악재로 작용한다. 연말에는 라니냐(태평양 수온이 낮아지는 현상) 발생으로 북미와 아시아 지역에 강추위가 예상돼 난방유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가는 이 같은 전망에 힘입어 당분간 유가가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노우호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8월 이후 북미 지역의 휘발유 재고량은 연초 대비 4.5% 감소했다”며 “공급과잉 해소로 올 연말 국제 유가가 55달러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유선물 거래량 두 배로 늘어

원유값 상승은 정유주들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휘발유 재고 감소로 정제 마진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금융 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올 3분기 전년 동기보다 68.0% 늘어난 6112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전망이다. 6일 SK이노베이션 종가는 15만원으로 이달 들어 5.6% 올랐다. 에쓰오일과 GS의 하반기 실적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원유 관련 상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국제 유가 등락에 베팅하는 대표적인 상품은 상장지수펀드(ETF)다. 원유 선물 가격을 추종한다. 유가 연계 ETF의 거래량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WTI 가격을 추종하는 ‘TIGER 원유선물(H)’의 지난 7월 하루평균 거래량은 15억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난달엔 21억원, 이달 들어선 34억원으로 거래량이 급증했다. 국제 유가 상승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상장지수증권(ETN)으로도 국제 유가에 투자할 수 있다. 브렌트유 가격 움직임을 복제한 ‘신한 브렌트원유 선물 ETN(H)’이 대표적인 상품이다. 유가 연계 파생상품 중에는 유가 움직임의 두 배를 추종하는 레버리지, 유가가 떨어지는 폭만큼 수익을 낼 수 있는 인버스 등 다양한 상품이 마련돼 있다.

글로벌 에너지 개발 인프라에 투자하는 마스터합자회사(MLP) 펀드를 활용할 수도 있다. MLP펀드 수익률은 국제 유가와 정비례 관계에 있다. ‘한국투자미국MLP’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선취 수수료를 떼는 A클래스 기준으로 16.34%다.

다만 일각에선 오는 26일 열리는 OPEC 회담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손재현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다른 나라들이 합의하더라도 이란이 생산량을 줄이지 않으면 원유 가격이 50달러 이상 오르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최만수/송형석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