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업체 에스와이제이는 28세 최고경영자(CEO)인 김소영 씨가 세운 3년차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다. 자투리 원단으로 옷을 제작해 원가를 절감하고, 온라인으로 주문한 옷을 오프라인 가맹점에서 곧바로 찾는 O2O(온라인·오프라인 연계) 서비스를 내놓는 등 창의적 발상을 앞세워 첫해부터 이익을 내며 매년 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투자를 받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벤처캐피털과 창업투자회사는 자사 임원을 경영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등 여러 조건을 내걸었다. 투자 검토에 석 달 이상이 걸린다는 점도 부담이었다. 게다가 금융사들은 김 대표의 학력과 경력까지 캐물었다.
그래픽=신택수 기자  shinj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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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돈을 모으나

답답함을 느끼던 김 대표에게 다가온 기회는 생겨난 지 7개월 된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이었다. 에스와이제이는 지난달 22일 마감한 모금에서 투자자 98명을 유치하며 7억원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김 대표를 포함한 회사 임직원들은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이 창업자에게 용기를 주는 관문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크라우드펀딩이 투자영역에서 스타트업 활성화에 불을 지피고 있다. 2일까지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 기업은 총 130개사. 중개업체에 의뢰했던 기업까지 합치면 더 많은 스타트업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금융권이나 벤처투자업계를 통한 자금 조달보다 제약을 덜 받는다는 점이 크라우드펀딩의 최대 매력으로 꼽힌다.

기업이 모금을 시작하기까지 필요한 준비 기간은 약 한 달. 이 기간에 해당 기업은 사업 현황, 재무제표, 임직원 이력, 성장전략, 투자금 회수 계획 등을 중개업체에 제출해 이 자료가 믿을 수 있는지를 평가받는다. 문제가 없다면 모금 규모와 기간, 기업가치(밸류에이션) 등을 정하고 바로 투자자 모집에 나선다. 수제 자동차업체 모헤닉게라지스의 김태성 대표는 “기존 투자 생태계에서는 시장에 대한 자료와 확실한 투자회수 계획이 있어야 자금을 유치할 수 있지만 과거에 존재하지 않은 사업을 하는 우리로서는 그 문턱을 넘어서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며 “크라우드펀딩은 사업 모델에 공감하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소액의 투자금을 모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191명의 투자자로부터 2억4820만원을 투자받은 데 이어 6월에도 96명으로부터 9806만원을 모았다.

소액 투자라고 모으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기업이 투자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중개업체에 제출한 기업 정보와 경영진 인터뷰 자료 정도다. 모금 기간 관련 내용을 홍보하는 것도 중개업체 홈페이지에서만 가능하다. 투자자의 질문과 이에 대한 기업 답변 역시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일명 ‘온라인 IR활동’을 통해 사업 매력과 향후 성장전략을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가 성공을 좌우한다는 평가다. 중개업체 오픈트레이드의 고용기 대표는 “투자자가 공감할 수 있는 사업과 계획을 제시한 기업이 대부분 모금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임종룡 “초기에 성공적으로 안착”

지난 7개월간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자금 조달에 성공한 기업은 71개사. 총 118억원을 마련했다. 투자 성공 사례도 나왔다. 제작비 약 170억원 중 5억원을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으로 마련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흥행가도를 달리며 지난 1일까지 관객 700만명을 동원했다. 계약상 현재 관객 수 기준으로 투자자는 24.6%의 수익률을 올렸다. 100만원을 투자한 사람이라면 124만6000원을 돌려받는다는 의미다. 이번 모금의 중개를 맡은 IBK투자증권의 임진균 상무는 “비슷한 성격의 영화인 ‘명량’과 ‘국제시장’이 성공한 지 오래 지나지 않아 개봉한 데다 사람들이 시나리오와 감독, 배우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를 내린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지난달 말 크라우드펀딩 시행 6개월 기념 간담회에서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이 안착했다”고 평가했다. 일단 스타트업이 자본시장에 진입하는 문턱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고 보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은 투자금 회수를 위한 시장 조성을 준비하고 있다. 올 하반기 내로 스타트업 전용 장외시장(KSM)을 개설할 계획이다. 초기에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주식 매입 후 1년간 매각을 금지하는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