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큰 폭으로 올랐던 주요 제약업체 주가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연구개발(R&D) 비용 부담으로 악화된 올 2분기 실적이 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국내 제약사가 기술수출한 치료제가 미국에서 임상시험에 실패한 것도 찬물을 끼얹고 있다.

◆풀죽은 제약주

'임상 늪'에 빠진 제약바이오주
지난달 이후 유가증권시장 의약품업종지수는 9.11%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수익률(1.4%)을 크게 밑도는 수치다. 올초까지 신고가 행진을 벌였던 한미약품은 지난달 이후 18.58% 떨어졌다. 같은 기간 동아에스티는 18.45%, 동국제약 16.37%, 대웅제약 15.85%, 녹십자는 8.75% 밀렸다. 코스닥시장 제약업종지수도 연고점(2월5일)에 비해 8% 이상 하락했다.

지난 4월 동아에스티로부터 700억원에 신약물질을 사들인 미국 토비라의 임상 2상 실패 소식이 전해지면서 업계의 장밋빛 전망에 금이 갔다. 구자용 동부증권 연구원은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토비라 주가는 60% 급락했다”며 “동아에스티를 비롯한 국내 기술수출 제약업체 주가도 내려앉았다”고 말했다. 종근당이 2009년 기술수출한 비만치료제 신약도 수입사인 자프겐 사정으로 최근 개발이 중단됐다. 종근당 주가도 연중최고가 대비 30% 넘게 빠졌다.

국내 제약사의 기술수출 소식이 들리면 곧바로 주가 급등으로 이어졌던 투자 패턴도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SK증권에 따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 1상에서 최종 신약이 개발되기까지 임상 성공 가능성은 9.6%에 불과하다. 배기달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신약 기술수출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상 실패에 대한 경각심이 부각되면서 투자자들이 제약주에 대한 차익실현에 나서고 있다. 가시적인 실적 개선이 없는 상태에서 급하게 올라버린 주가에 대한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제약업종의 주가수익비율(PER)은 40배에 이를 만큼 고평가된 상태다.

◆김영란법 악재될까

올 2분기 주요 제약사의 이익 증가세도 꺾였다.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10~20%씩 늘어 외형은 커졌지만 영업이익은 동아에스티(-47.4%) 일양약품(-29.90%) 녹십자(-20.47%) 등을 중심으로 줄어들었다.

김주용 키움증권 연구원은 “R&D 비용이 크게 늘어나면서 이익이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상위 6개 제약사의 2분기 R&D 비용은 총 1569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2% 증가했다. 배기달 연구원은 “과거처럼 외형 성장폭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R&D 확대와 수익성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오는 9월 이후 시행되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도 제약주에 부담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공립병원 및 대학병원 등에 대한 학술 지원과 제품설명회 등을 통한 제약업계의 영업 활동이 위축돼 실적 부진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제약사의 올 4분기 중 임상 진입 및 결과 발표 일정이 확인되면서 연말로 갈수록 R&D 성과가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대웅제약과 한미약품 수출기술의 임상 발표가 예정돼 있다. 그전까지 대형 제약주보다는 2분기 실적이 개선된 바이오업체 중심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곽진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좋은 실적을 낸 메디톡스 에스티팜 아이센스 등을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