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가 디뎌야 할 미래는 ‘지도에 없는 길’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과 일본의 증권업계도 20~30년 전에 이미 수수료 수입 감소, 증권사 난립, 저금리·저성장·고령사회 등 한국 증권업계와 비슷한 고민에 직면했다. 이들 나라 증권업계가 찾은 해법은 온라인화, 틈새시장 개척, 자산관리시장 확대였다.

미국 증권업계는 1975년 위탁매매수수료 자율화로 격랑에 휩싸였다. 180년간 유지된 고정 위탁매매수수료 제도라는 ‘병풍’이 사라지자 증권사의 수익성이 크게 나빠졌다. 이후 오일쇼크 등에 따른 증시 침체와 지속적인 수수료 인하로 증권사의 수익성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증권업계 판이 흔들린다] '고정수수료 폐지'로 위기 맞았던 미국, M&A 자문·해외진출로 돌파
미국 증권사들은 자산관리와 혁신적인 상품 개발을 통해 수익원 다변화 노력을 기울였다. 1980년대에는 적대적 인수합병(M&A)과 차입매수(LBO)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증권인수와 M&A 자문서비스 시장에 주력했다. 투자은행(IB)들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도 이때다. 모건스탠리가 스페인과 쿠웨이트 등에서 M&A 사업을 하면서 사세를 키웠고 씨티은행이 영국 런던을 거쳐 신흥시장으로 해외 진출을 가속화했다. 마침 1980년대 호황으로 부유층의 자산규모가 늘어나면서 자산서비스 수요가 증대된 점도 미국 증권사들의 숨통을 틔웠다.

1990년대 일본 증권업계는 요즘 한국 증권업계를 복사해 놓다시피 한 모습이었다. 일본은 1998년 증권업이 면허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하면서 증권사 진입 규제가 완화됐다. 1999년에는 수수료가 완전 자율화됐다. ‘거품 붕괴’에 따른 장기불황에 증시 침체가 겹치면서 일본 증권업계는 상시 위기체제를 맞았다. 저금리와 저성장, 인구 고령화의 ‘3대 악재’도 일본 증권사들을 괴롭혔다. 1990년 227개에 이르던 일본 증권사 중 147개사가 1990년대 말 도산했다.

온라인 전문 증권사, 기업금융 전문 증권사와 같은 틈새시장을 겨냥한 전문 증권사가 다수 등장하면서 업계 지형도도 많이 바뀌었다. 기관영업과 선물거래,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업체들도 나왔다. 대형사는 위탁매매 점유율이 낮아지면서 자산관리형 사업모델로 빠르게 전환했다. 일본 증권업계는 노무라 다이와 같은 대형 증권사, 온라인 증권사, 은행계 증권사, 외국계 증권사 등으로 재편됐다. 중국주식 중개를 전문으로 하는 도요증권과 비상장주식 매매에 특화한 디브레인증권, 엔젤증권, 미래증권 등 특화사업 전문 증권사도 늘어났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