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의 대형화 경쟁은 중소형 증권사들엔 ‘남의 나라 얘기’다. 자본 확충은 성장 과정에서 필요하지만 당장 대형화 경쟁에 뛰어들 여력이 없다. ‘인수합병(M&A) 전쟁’의 먹잇감이 되거나 문패를 내리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온다. 온라인 자산관리, 중소기업 특화, 핀테크(금융+기술) 등에서 틈새시장을 발굴해야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인식에 ‘특화 증권사’로 속속 성장전략을 바꾸고 있다.
[증권업계 판이 흔들린다] 온라인 자산관리·중국 주식 중개…키움·유안타 "특화 만이 살 길"
◆“까다로운 규제 늘어”

금융위원회가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방안을 발표한 다음날인 3일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들은 절박한 심경을 내비쳤다. 한 중소형 증권사 사장은 “대형사를 제외한 대다수 증권사는 서로 싸우다 알아서 죽으란 얘기”라며 “중소형사 중 절반 이상이 수년 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사를 지원하는 정책은 자기자본이 적은 증권사에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영업용순자본비율(NCR) 제도가 개선됐다고 하지만 중소형사는 사업영역을 축소하는 곳이 적지 않다. 리딩투자증권은 지난 4월 일반투자자 면허를 반납했다. 토러스투자증권은 투자자문업과 투자일임업에 이어 주요 수익원이던 장내 파생상품 투자매매업 면허까지 포기했다. 자본요구 비율이 높은 영업의 면허를 반납해 까다로워진 NCR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中企 전문 증권사’ 경쟁 본격화

금융당국은 중소형 증권사 지원책으로 중소·벤처기업 자금조달 업무에 특화한 ‘중기(中企) 전문 IB’ 육성방안을 내놓고 지난 4월 키움증권 유안타증권 KB투자증권 IBK투자증권 유진투자증권 코리아에셋투자증권을 중기 전문 IB로 선정했다.

현대증권과 합병해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되는 KB투자증권이 자격을 상실하면 차순위인 KTB투자증권이 중기 전문 IB가 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중기 특화 증권사에 앞으로 2년간 중소기업 관련 회사채 발행이나 M&A 전용펀드 주관사 선정에서 우대해주기로 했다.

유안타증권은 중화권 전문 증권사의 장점을 살려 국내 유망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을 돕고 중국주식 중개에도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IBK투자증권은 중소·벤처기업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SME금융팀을 신설하고 연구인력도 강화했다.

중기 특화 증권사의 지정 효력은 2년이며 중간평가를 통해 실적이 부진한 업체는 탈락시킨다. 이 때문에 더욱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고배를 마신 SK증권 BNK증권 등도 재도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한편으론 작은 기업일수록 절대 수수료를 많이 받을 수 없어 수익성 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라는 반응도 나온다. 결국 이 분야에서 2~3개 업체만 살아남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해외주식 중개도 확대

먹거리가 없다면 새롭게 만들어서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키움증권은 개인 주식위탁매매(브로커리지) 점유율을 토대로 온라인 자산관리시장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지점을 방문하는 대신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 자산 포트폴리오를 꾸릴 수 있는 서비스다.

해외 투자가 늘어나는 만큼 해외주식 중개에 집중하겠다는 곳도 있다. 유진투자증권은 일본 아이자와증권과 업무제휴를 맺어 리서치 자료 등을 공유하고 있다. 동부증권은 미국 중소형 증권사인 ‘부티크’를 벤치마킹해 고객사에 맞춤형 IB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만수/고은이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