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상공계 등 지역 여론 "재발의 개정안, 못 믿겠다"
정치권·거래소 "지주사 본점은 부산, 떠나는 일 없다"


한국거래소(KRX) 지주체제 전환과 기업공개(IPO) 등을 담은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20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됐지만 19대 국회 때처럼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대 국회 때 발의된 개정안이 폐기될 당시 최대 쟁점이었던 '지주체제 전환 후 지주사 본점 부산' 명기 논란이 재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상공회의소가 지난 8일 국회 정무위원장인 이진복 새누리당의원이 발의한 '자본시장법 일부 개정안'을 못 믿겠다며 개정안에 거래소 지주회사 본점 소재지를 반드시 부산으로 명기해야 한다는 법률 검토 의견서를 냈다.

현행법 부칙 제15조 4항에는 '거래소 본점은 부산광역시에 둔다'라고 명문화되어 있다.

이 조항은 19대 국회 때 발의된 개정안에는 '지주회사와 자회사 본사는 부산에 둔다'라는 표현으로 변경됐다.

부칙 문구가 수정됐지만, 애초부터 거래소 본점이 부산에 있었던 만큼 지주체제 전환 후 본사를 부산에 둔다는 건 당연하게 여겨졌다.

이 개정안은 지난해 7월 금융위원회의 '거래시장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 직후 이진복 의원에 의해 발의된 것으로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거래소 구조 개편으로 대한민국 자본시장 혁신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엉뚱한 곳에서 발목이 잡혔다.

몇 가지 쟁점이 있었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한 '거래소 지주회사와 자회사 본사는 부산에 둔다'라는 수정 부칙이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고, 결국 19대 국회가 문을 닫을 때까지 부칙을 둘러싼 이견을 해소하지 못한 채 개정안 폐기라는 수순을 밟고 말았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을 비롯해 일부 정무위 소속 의원들이 '지주회사 본사든, 자회사 본사든 본사 소재를 법으로 강제할 수 없다'며 개정안 처리에 반대했고, 이들 의원은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등 부산지역 13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거래소 본사 지키기 범시민운동'이란 명분으로 거세게 저항했고, 19개 국회 말미까지 개정안을 둘러싼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질 수가 없었다.

새롭게 출발한 20개 국회는 한시가 급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재발의했다.

새 개정안은 본점 소재지와 관련한 논란을 피해 가려 부칙 본점 소재지와 관련 '거래소 지주회사 본점을 금융중심지 조성과 발전에 관한 법률에 따른 금융중심지로서 파생상품시장 등 자본시장에 특화된 지역에 둔다'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파행상품시장 중심의 부산 금융중심지'를 염두에 둔 것으로, 결과적으로 지주체제 전환 후 '지주회사 본점을 부산 금융중심지에 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본점 소재지'에 특정 지역인 부산'을 법에 명기하는 것을 꺼리는 수도권 지역 의원들의 불만도 해소할 수 있는 묘안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부산상공회의소는 개정안 검토 후 '해석에 따라 달리 판단할 수 있는 모호한 표현이자. 본점 소재지를 부산시로 확정할 수 없는 부적절한 조문'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부산상공회의소 주장의 핵심은 '파생상품시장 등 자본시장에 특화된 지역이 부산이라고 확정할 수가 없고, 해석에 따라서는 서울을 포함한 또 다른 지역이 될 수도 있다'라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대체거래소 등 자본시장이 소재하는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어느 지역이나 갈 수 있는 변동성을 내포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새 개정안을 검토한 부산상공회의소 측은 "금융중심지 조성과 발전에 관한 법률 제5조에 따르면 복수 금융중심지 지정이 가능하고, 그 심의도 3년마다 할 수 있다.

또 같은 법 시행령 제4, 7조에는 광역지자체 어디라도 필요에 따라 금융중심지를 신청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았다"고 지적했다.

또 "현재 서울시가 광화문 일대를 금융중심지로 추가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고, 전북지역도 꾸준히 금융중심지 지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향후 다수의 금융중심지가 지정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본점 소재지 부산을 법률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대 국회 당시에도 '지주사 본점 부산' 명기와 관련한 여론을 주도했던 부산상공회의소는 이 같은 새 개정안 검토 결과를 이진복 의원 등 정치권에 전달하고, 요구 사항을 반드시 관철하겠다고 밝혀 부칙 본점 소재지 논란이 새 개정안의 뜨거운 감자로 재부상할 조짐이다.

이에 대해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이해당사자인 거래소 측은 '새 개정안 부칙만으로도 부산 외에는 다른 지역이 본점 소재지가 될 수 없다'라며 부산상공회의소 등 지역 여론의 대승적 판단을 호소하고 있다.

최경수 거래소 이사장은 새 개정안 발의 직후 "현 거래소 체제에서는 시장 관리 운영밖에 할 수 없다.

지주사 전환을 통해 거래소는 민간기업으로 모든 시장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업무를 다각적으로 개발해 거래소 기업집단, 거래소 산업을 만들어야 한다.

부수적인 문제가 법안 통과를 또 가로막은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거래소 지주체제 전환과 기업공개 등 구조 개편을 하지 않은 나라는 사실상 대한민국뿐이다.

OECD 국가만이 아니라 주요 경쟁국인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도 구조 개편을 완료하고 우리보다 먼저 달려나갔다.

글로벌 자본시장은 '국경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경을 넘은 거래소 간 합병으로 거대 글로벌 거래소가 탄생하고, 연계 비즈니스 시장도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자본시장 인프라의 중심인 거래소만 글로벌 흐름에 편승하지 못한 채 점점 뒤처지고 있다.

자본시장법 개정은 갈림길에 선 우리 자본시장의 혁신을 위해 추진됐다.

20대 국회가 자본시장법 새 개정안 통과를 서둘러도 지주회사 출범까지는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글로벌 자본시장은 변화는 지금도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경수 거래소 이사장은 "자본시장과 거래소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조속히 법이 통과되기를 기대한다.

우리 자본시장이 해외와 경쟁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부산상공회의소는 새 개정안 검토 결과에서 '지주사 본점 부산' 명기는 양보할 수 없지만, 부산금융중심지 발전의 핵심동력인 거래소가 성공적인 기업공개를 통해 글로벌 거래소와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차원에서의 자본시장법 개정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새 개정안을 발의한 정치권, 그리고 거래소뿐만 아니라 부산상공회의소 등 지역 여론 역시 자본시장법 개정의 시급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만큼 대승적 차원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부산연합뉴스) 신정훈 기자 s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