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공식’이다. 코스피지수 2000을 넘어선 지난 13일 이후 공모형 국내 주식형펀드에선 매일 1000억원 안팎의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지수 상승이 2000~2050을 분기점으로 내림세로 돌아섰던 전례가 되풀이될 것으로 생각한 투자자들이 서둘러 펀드를 정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코스피 2000 넘자 매일 펀드 매물 1000억씩 쏟아져…대세 상승을 믿는 투자자가 없다
◆펀드 매물에 가로막힌 코스피

코스피지수는 19일 전날보다 0.21% 떨어진 2016.89에 장을 마쳤다. 지난 11일 이후 6거래일 연속 이어졌던 상승세가 한풀 꺾인 모양새다. 외국인이 3000억원어치 안팎의 주식을 순매수했지만 자산운용사 창구를 중심으로 기관들의 매물이 쏟아지면서 지수가 내림세로 돌아섰다.

펀드 매물이 코스피지수 발목을 잡기 시작한 것은 지수가 1980선에 올라선 이달 초부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펀드 설정액(투자자가 넣은 원금)은 38조6654억원이었다. 지난 1일부터 15일까지 펀드 설정액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 감소했다. 15일 기준 설정액은 38조1371억원. 11거래일 동안 5283억원이 이탈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주식형펀드에서 빠져나온 자금은 종합자산관리계좌(CMA)로 흘러들었다. 지난달 말 43조9789억원이었던 개인투자자들의 CMA 잔액은 18일 기준 44조5578억원으로 증가했다. 채권형펀드로도 이달 들어 하루 평균 300억~4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세 상승장을 믿는 투자자들이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김정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2011년부터 5년째 박스권 증시가 이어지면서 지수 2000선 위에선 매도, 1900선 근처에서 매수라는 패턴이 투자 정석으로 자리 잡았다”며 “외국인들이 펀드 매물을 압도할 만큼의 자금을 집어넣지 않는 한 박스권을 벗어나는 게 쉽지 않은 구조”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임원도 하락에 ‘베팅’

삼성전자는 코스피지수 2000선 돌파의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2분기 ‘깜짝 실적’으로 주가가 150만원을 넘으면서 유가증권시장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이 종목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 안팎에 달한다.

19일 삼성전자 종가는 전날과 같은 153만3000원이었다. 지수가 소폭 내린 점을 감안하면 선방한 셈이다. 하지만 이날도 개인투자자들은 주식을 파는 데 집중했다. 삼성전자와 코스피지수의 향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 것이다. 이날 펀드 투자자(자산운용사)들이 쏟아낸 순매도 물량은 404억원에 달했다. 개인투자자들 역시 156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임원들도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삼성전자 주식을 팔았다는 임원 공시 11건 중 7건이 6월 이후 나왔다. 가장 최근 매도 공시를 낸 정성욱 생활가전 개발팀 상무는 주당 149만9000원에 삼성전자 주식을 팔았다. 지완구 경영혁신팀 부사장은 147만6000원에 1406주, 정칠희 종합기술원장(사장)은 149만8000원에 100주, 박찬훈SAS(삼성오스틴반도체)법인장(전무)은 147만원에 260주를 정리했다.

일부 전문가는 삼성전자 임원들의 매도 공시를 이 회사 주가가 한계에 달했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회사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상승 여력이 크다고 판단했다면 조금 더 기다렸을 것이란 해석이다.

송형석/윤정현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