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의 숫자에 1%의 예술을 더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해오던 게 숫자와 씨름하는 일이다보니 사업 경험이 없더라도 운영을 잘 해낼 자신은 있었다. 다만 소비자들의 취향을 충족할 만한 예술적인 감각이 부족했다."

서경원 테이스터스 재무·운영이사(CFO·COO)를 지난달 말 서울 여의도 테이스터스 본사에서 만났다. 테이스터스는 공인회계사 출신인 서 이사와 외국계 운용사 펀드매니저 출신인 백성훈 대표(CEO), 또 다른 펀드매니저 출신 허지욱 전(前) 이사, 요리사인 데이비드 백 제품개발이사가 2014년 공동으로 설립한 식음료 전문업체다. 서 이사와 다른 공동설립자들은 오랜 지인 관계다. 백 대표와 서 이사는 대학동기이고, 백 대표와 백 이사는 친형제다.

이 회사는 수제버거 전문점 브랜드인 '바스버거'와 소프트아이스크림 전문점 브랜드 '바스티유'를 가지고 있다. 바스버거 광화문·여의도점과 바스티유 광화문·이태원점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역삼점 신규 출점을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비용 중 일부를 조달했다. 오마이컴퍼니에서 중개한 크라우드펀딩에는 목표 금액의 87.1%인 총 3920만원이 모였다.

올해는 직영점을 5호점까지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추가적인 확장에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일반 투자자들의 참여를 늘린다는 방침이다. 조달 금액은 규모가 작지만 투자자가 곧 소비자이라는 점에 주목해 충성고객 확보와 입소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왼쪽부터 데이비드 백  CRO, 백성훈 CEO, 서영우 여의도점 총괄 매니저, 서경원 CFO, 곽충헌 광화문점 총괄>
<왼쪽부터 데이비드 백 CRO, 백성훈 CEO, 서영우 여의도점 총괄 매니저, 서경원 CFO, 곽충헌 광화문점 총괄>
◆ 테이스터스, 금융권 '숫자쟁이'와 '예술가'의 만남

테이스터스, 이들의 창업은 조금 달랐다. 금융권에서 직장 생활만 하던 백 대표와 서 이사는 창업도 젊은 금융인의 감각으로 접근했다. 자신감은 '숫자'(회계)였다. 회사의 모든 과거와 현재가 재무제표 상의 숫자로 드러난다고 믿었고, 이는 이들의 전문분야였다.

서 이사는 "회계사랑 매니저 출신이었던터라 인수합병(M&A) 업무나 기업가치를 분석했던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숫자와 분석, 실행에는 자신이 있었다"며 "다만 막상 사업을 시작하려다보니 실제 기술과 예술적인 면에서는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고 털어놨다.

미국 뉴욕 출신인 백 이사가 합류하게 된 배경이다. 서 이사는 제품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백 이사를 두고 '아티스트'(예술가)라고 표현했다. 백 이사는 바스버거 이전에도 자신만의 수제 버거 브랜드를 직접 운영했던 경험이 있었다.

브랜드의 성장전략은 백 대표가, 재무와 운영은 서 이사가 맡고 제품과 관련한 모든 업무는 백 이사가 맡기로 했다. 서 이사는 "업무를 분담하기는 했지만 사실 원래 친한 사이들이기 때문에 허물없이 의견도 나누고 같이 어울리며 놀다가 새로운 구상을 많이 얻기도 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창업을 결정하고 초기 투자자들도 모집했다. 그동안 각자 벌어뒀던 돈도 있었지만 구상했던 '큰 그림'에는 더 많은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서 이사에게는 또 다른 난관도 있었다.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갑자기 사업을 한다고 하자 부모님들의 반대도 거셌다. 결혼은 안 할 생각이냐는 핀잔부터 들었다.

군인 출신의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서 이사는 사업보고서부터 따로 작성했다. 식음료 업종 전망과 소비자 분석을 포함한 15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였다. 그는 "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면서 사업설명을 시작했다"며 "3페이지가 넘어갈 때쯤 아버지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해봐라 하고 말씀해주셨다"고 말했다.

◆ 겁없는 초짜들 '테이스터스'…소프트 아이스크림부터 수제버거까지

이들은 식음료 산업의 성장성에 주목했다. 자신들처럼 유행에 민감한 젊은 소비자층을 대상으로 한 아이템 찾기에 몰두했다. 미국 뉴욕으로 2주간 시장조사를 떠났다.

서 이사는 "말이 시장조사였지 셋이서 평소 궁금했던 브랜드들을 찾아다니면서 먹고 마시고 놀러다닌 셈이었다"며 "정말 보고 싶었던 까페나 디저트 가게들을 돌아다녔는데 막상 나흘 정도되니까 기대와 달라서 실망했던 부분들도 많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미국 소비시장에 대한 일종의 동경 같은 게 있었는데 막상 보니 기대에 못 미쳤다는 얘기다. 기대와 가장 크게 달랐던 부분은 '맛과 품질'이었다. '빅게이'와 같이 독특한 콘셉트를 내세운 가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맛과 품질 면에서 부족한 느낌을 받았다.

'겁없는 초짜'(?)들은 내친 김에 미국 진출도 못할 것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테이스터스의 첫 매장을 이태원에 연 것도 이 같은 포부 때문이었다. 외국인 관광객과 젊은 소비자들이 많은 이태원에서 가능성을 시험해보려는 의도였다.

2014년 4월 아이스크림 전문점 '바스티유'가 이태원에 문을 열었다. 씨리얼 아이스크림과 쉐이크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큰 주목을 받았지만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아이스크림의 계절성 때문이었다.

서 이사는 "계절적인 특수성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아이템으로 제품군을 다양화 할 필요성을 느꼈다"며 "가볍게 즐길 수 있으면서 품질 경쟁력은 유지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떠올린 게 '수제 버거'였다"고 말했다.

테이스터스는 지난해 1월 광화문에, 올해 4월에는 여의도에 바스버거 직영점을 열었다. 미국의 '쉑쉑버거'와 같은 패스트캐쥬얼 콘셉트다. 좋은 식재료로 만든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건강과 유행, 두 가지에 민감한 소비자들이 줄을 지었다. 여의도 매장의 경우 월 평균 매출 7000만~8000만 수준을 기록했다.

서 이사는 "지출 중 식재료와 인건비 비중은 높지만 임차료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추는 방식으로 이익률을 높이고 있다"며 "여의도의 경우 매출 대비 임차료 비중을 10% 미만으로 낮춰서 영업이익률을 30% 수준까지 높였다"고 귀띔했다.

◆ 화려한 경력 접고 선택한 꿈은 '현재진행형'

테이스터스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안정과 돈'보다 '모험과 즐거움'을 쫓고 있었다. 아이스크림과 버거 이후에 다음 아이템 역시 자신들의 생활 주변에서 찾겠다는 구상이다.

내년까지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매장을 30개까지 확대, 안정적인 운영기반을 잡겠다는 게 테이스터스의 1차 목표다. "직영점 외에 가맹점 계획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안정적인 직영점 운영이 먼저"라며 "이후 처음부터 목표로 삼았던 해외 진출도 구체화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해외 진출 계획에서 달라진 부분은 우선 진출 대상국으로 중국을 고려하게 됐다는 점이다. 실제로 중국 내 F&B 회사들이나 중국 진출을 추진 중이 국내기업들로부터 투자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일주일에 3~4개의 관련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 이사는 "식음료 회사들뿐 아니라 여러 업종에서 업무제휴를 묻고 있지만, 되도록 마스터프랜차이즈 형태의 현지 파트너나 직접 진출 방식으로 추진해보고 싶다"며 "미국이든 중국이든 아직은 회사가 작아서 국내 기반이 안정된 후에 도전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계획을 밝혔다.

올해 테이스터스의 대표이사직을 맡을 예정인 서 이사는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유명 회계법인인 삼정KPMG와 딜로이트 기업금융자문(FAS), 키움자산운용까지 금융권에서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성공한 이유는 지난 경력 때문이 아니다.

서 이사는 "이전에도 금전적으로 큰 욕심이 없으면 부족하지는 않을 삶이었지만, 가정도 잘 챙길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일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고 회사를 나왔던 심정을 들려줬다.

직장을 다닐 때와 사업을 하고 있는 지금을 비교해달라는 말에 그는 "(지금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바로 대답했다. "연봉은 과거 평균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많이 줄었지만 지금은 일하는 게 정말 즐겁다"며 "물론 바스티유나 바스버가가 다 잘 안됐다면 어땠을지는 상상하기 싫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민하 한경닷컴 기자 mina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