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한국을 떠난다…제조업 이어 금융투자도 해외로
이달 초 JB자산운용이 내놓은 ‘미국 소상공인 대출채권 펀드’는 모집 당일 ‘완판(완전 판매)’됐다. 상대적으로 신용위험이 높았지만 짧은 만기(6개월)에 연 7% 수익률을 내건 펀드였기 때문이다. 미국 모(母)펀드가 한국에 배정한 60억원 한도는 전화 세 통으로 간단히 채워졌다.

해외 투자 열기가 뜨겁다. 주식 펀드 채권 부동산 등 가릴 것 없이 전방위다. 개인도, 기관투자가(연기금, 보험회사, 자산운용회사)도 모두 해외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국내 저성장-저금리 장기화에 지친 투자자들의 몸부림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한편에선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에 투자됐더라면 내수 진작은 물론 새로운 일자리도 많이 창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주요 기업이 비용을 낮추기 위해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으로 생산기지를 대거 옮기면서 나타난 ‘제조업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한국 자본시장에서 재연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4년 79억달러이던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거래 규모는 지난해 140억달러(78.4% 증가)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12년(29억달러)과 비교하면 382.7%나 늘어난 수치다. 해외 펀드에도 자금이 몰리고 있다. 지난해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는 4조4295억원이 빠져나간 반면 해외 주식형 공모펀드엔 2조2154억원이 유입됐다. 강대석 신한금융투자 사장은 “요즘 투자자에게 삼성전자 대체재는 LG전자나 SK하이닉스가 아니라 애플, 샤오미 등”이라며 “해외 투자가 눈에 띄게 늘면서 일본의 ‘와타나베 부인’, 유럽의 ‘소피아 부인’과 비슷한 의미의 ‘김 여사’가 국제적으로 통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해외 부동산과 채권 투자도 매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올 1분기 해외 부동산펀드 설정액은 2014년 말(7조3251억원)보다 96.5% 증가한 14조4001억원을 기록했다. 해외 채권 투자 잔액도 지난 1분기 587억달러로 전년 동기(351억달러)보다 67.1% 늘어났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투자…일자리도 같이 나가"

이 같은 해외투자 행렬은 저성장 늪에 빠져 있는 한국 경제가 투자와 소비 확대를 견인할 수 있는 구조개혁과 산업 구조조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0.1%포인트의 금리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돈의 흐름이 한국 경제를 향해 물꼬를 트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주식시장이 5년째 지루한 박스권(코스피지수 1800~2150)에 갇혀 있는 것도 저성장 장기화의 산물이다. 지난 16일 기준으로 과거 5년간 미국 다우지수(38.0%)와 닛케이225지수(59.7%), 상하이종합지수(31.0%)가 고공행진을 펼치는 동안 코스피지수는 고작 1.0% 상승하는 데 그쳤다. “배당률, 잠재성장률, 통화 가치 등 여러 가지 요건을 감안하면 국내에 투자할 이유가 별로 없다”(고숭철 사학연금관리공단 주식운용팀장)는 진단이다.

물론 해외투자가 중장기적으로 수익 창출을 통해 국내 연기금 및 보험사 등의 자산 증식과 국민의 노후 소득 증가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고채 수익률이 연 1.3%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더 높은 수익을 찾아나서는 투자자를 말릴 방편도 없다.

그럼에도 많은 전문가는 가뜩이나 활력을 잃은 한국 경제가 자본의 해외탈출로 더욱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과거 제조업의 해외 이전이 국내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앗아간 것처럼 해외투자 확대도 국내 투자와 고용의 기회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내수 위축은 불을 보듯 뻔하다”며 “구조개혁 등 저성장을 탈피할 수 있는 경제체질 개선 없이는 떠나는 투자자의 발길을 돌려세울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우섭/이현진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