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의 최대어로 꼽혔던 호텔롯데의 연내 상장이 불투명해지자 IPO를 준비하는 다른 기업들은 오히려 미소를 짓고 있다.

호텔롯데의 상장 철회로 졸지에 갈 곳을 잃은 공모 투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등 반사 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홍보 대행업체는 IPO를 앞두고 이달 말 진행할 예정인 담당 기업의 기업설명회(IR) 장소를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넓은 곳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호텔롯데가 상장을 철회하면서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IR에 기관투자자들이 많이 몰릴 것 같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호텔롯데는 지난 13일 검찰 수사를 이유로 금융위원회에 상장 철회신고서를 제출하고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미국을 방문 중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4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호텔롯데를 연말에 상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연내 상장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호텔롯데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IPO 예정 기업들은 화색이 돌고 있다.

호텔롯데와 시기가 겹치는데 따른 청약 흥행 실패 우려가 해소됐기 때문이다.

호텔롯데에 투자하려고 대기하던 공모 자금이 비슷한 시기에 IPO를 진행하는 다른 기업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커져 애초 예상보다 흥행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IR 업계 관계자는 "일부 기업은 호텔롯데를 피해 IPO 일정을 잡으려고도 했던 만큼 호텔롯데의 상장 철회를 호재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호텔롯데를 기다리던 기관투자자의 공모 수요가 다른 기업으로 쏠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코스닥 상장을 앞둔 세포 치료제 개발업체 녹십자랩셀은 이날까지 일반 공모 청약을 진행한 결과 800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청약 증거금으로만 2조9천억원이 몰렸다.

검찰의 롯데 수사가 본격화된 뒤인 지난 13∼14일 수요예측을 진행한 중국 기업 로스웰인터내셔널의 경우 578곳의 기관이 수요예측에 참여해 386.9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공모가는 밴드 상단인 3천200원으로 확정했다.

앞서 신약 원료의약품(API) 위탁생산(CMO) 기업인 에스티팜도 지난 9∼10일 기관 수요예측을 진행한 결과 71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자체의 가치도 충분히 기관투자자의 관심을 끌 만하기는 했지만, 호텔롯데의 상장 철회에 따른 반사 이익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공모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가운데 향후 IPO를 준비 중인 기업들도 이 같은 수혜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코스피 상장을 앞둔 부동산 신탁 전문 기업 한국자산신탁은 오는 23∼24일 기관 수요예측을 거쳐 오는 30일과 다음 달 1일 공모주 청약에 나설 예정이다.

김치냉장고 브랜드 딤채로 널리 알려진 대유위니아는 오는 27∼28일 수요예측, 다음 달 4∼5일 청약을 거쳐 코스닥 시장에 입성할 계획이다.

이 밖에 전동기 제조업체 피앤씨테크와 의약·약학 연구개발업체 바이오리더스, 보안업체 지란지교시큐리티, 금속가공업체 장원테크, 특수목적용 기계업체 뉴파워프라즈마 등도 IPO를 준비 중이다.

올 하반기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두산밥캣, 넷마블게임즈 등 다른 대어들의 상장 계획도 줄줄이 잡혀 있어 이를 피해 일정을 앞당기는 기업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에는 연말로 IPO 기업이 몰리는 바람에 기업가치와 상관없이 자금이 안 돌아 공모를 철회하는 곳도 있었다"며 "이를 감안하면 휴가철이 포함돼 있더라도 아예 일찍 하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hanajj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