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재테크 상품’으로 알려진 개인연금의 수명은 의외로 짧다. 10년 이내 중도해지율이 43.5%에 달한다. 눈앞의 세제 혜택을 받는 데 급급해 심사숙고하지 않고 연금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이 ‘개인연금법’을 통해 투자일임형 연금 상품을 허용하고, 여러 연금 상품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개인연금계좌’를 도입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알아서 포트폴리오를 관리해주는 전문가가 ‘코치’ 역할을 하고, 일목요연하게 연금 관련 정보를 볼 수 있게 해야 연금의 실효성이 높아진다고 본 것이다.
펀드·IRP 등 개인연금 한 계좌서 통합관리
◆수수료 내면 금융회사가 알아서

이번 개인연금법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개인연금의 투자 판단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일임형 상품의 신설이다.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처럼 금융회사가 자체적으로 제안하는 모델 포트폴리오에 따라 연금 자산을 운용한다. 금융회사의 모델 포트폴리오는 금융시장의 변화를 반영해 매달 조금씩 달라진다. 기존 연금저축신탁(은행), 연금저축펀드(증권사), 연금저축보험(보험사) 등은 한번 상품을 선택하면 중간에 투자전략을 바꾸기 어려웠다.

연내 개인연금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증권사에서 일임형 연금 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 현행법상 보험사도 투자일임이 가능하지만 수요가 없어 투자일임업을 등록한 회사가 없다. 은행은 ISA를 제외하면 일임 자격 자체가 없다.

◆연금펀드도 위약금 없이 취소 가능

연금자산의 종합적인 관리를 위한 ‘개인연금계좌’가 신설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펀드, 신탁, 보험, 개인퇴직연금계좌(IRP) 등과 관련된 정보를 한꺼번에 보여준다. 납입액, 수수료 등은 물론 예상 연금수령액도 한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단 같은 금융회사 상품들만 통합 조회가 가능하다. ISA처럼 ‘1인 1계좌’ 원칙을 적용하면 기존에 가입한 상품을 한군데로 옮겨야 하는 불편이 있어 금융회사별로 통합 관리 계좌를 개설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지금도 금융감독원의 연금포털사이트에서 개인이 가입한 금융사 연금가입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일각에서 새로운 제도가 실용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새로 도입되는 개인연금법에는 가입권유, 계약, 운용, 수령 등의 단계에서 연금 가입자를 보호할 수 있는 규정이 담긴다. 가입자 성향이 금융회사가 추천한 연금 상품과 맞지 않으면 상품 권유를 할 수 없게 된다. 가입 후 숙려 기간을 주는 제도도 신설된다. 연금 상품에 가입한 후 일정 기간 이내에 계약을 철회하면 위약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 현재 위약금 없이 해지가 가능한 상품은 보험상품(30일)뿐이다. 연금펀드, 연금신탁 등은 가입 계약 취소가 불가능하다.

개인연금 압류를 부분적으로 제한하는 조항도 만들어진다. 압류에서 자유로운 금액을 얼마로 할지는 최저생계비, 연금 규모를 감안해 결정할 방침이다.

박주영 금융위원회 투자금융연구팀 과장은 “기초연금 관련법은 과세제도 적용을 목적으로 도입돼 연금 자산의 관리 운용 및 가입자 보호 기능이 미흡했다”며 “상품별로 보험업법(연금보험)과 자본시장법(연금신탁, 연금펀드)에 적용받던 것을 ‘개인연금법’으로 통합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안상미/이유정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