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펀드 관련 규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회사만 다르고 내용은 똑같은 ‘붕어빵 펀드’로는 국민의 재산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의 재간접 투자나 파생상품을 이용한 손실제한형 펀드 등이 활성화되면 천편일률적인 펀드 시장이 역동적으로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규제완화는 시행령 개정사항으로 빠르면 연말부터 신상품이 나올 전망이다.
[선진국형 펀드상품 쏟아진다] 연 5% 절대수익에 손실한도 설정…'부자 펀드' 문턱 낮아진다
(1) 개미들도 ‘부자 리그’에 참여

평범한 직장인에게 사모펀드는 ‘그림의 떡’이다. 펀드당 투자자의 숫자를 49명으로 제한하고 있고, 최소 1억원 이상이 있어야 펀드에 가입할 수 있다. 운용사가 자체적인 기준에 따라 5억원 이상으로 투자금을 제한하는 곳도 수두룩하다. 펀드 규모를 키우려면 자산가 고객들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금융회사들의 설명이다.

앞으로는 일반 투자자도 ‘부자들의 전유물’인 사모펀드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별도로 꾸려진 재간접 펀드가 49개인 사모펀드 투자자풀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개념이다. 500만원씩 넣는 투자자라도 1000명이 모이면 자산 규모가 50억원이 된다. 사모펀드 운용사가 이들을 배제할 이유가 없다. 시황에 관계없이 연 5% 안팎의 수익률을 내주는 절대수익 추구형 헤지펀드,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는 CB(전환사채)에 투자하는 메자닌 펀드 등이 각광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개별 사모펀드에 넣을 수 있는 자금은 전체 펀드 자산의 20%까지로 제한했다.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에 재간접으로 투자하는 방안은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2) 지수 뛰어넘는 액티브 ETF 등장

경우에 따라 추종하는 지수보다 더 나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를 허용한 것도 관심을 끈다. ETF는 상장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거래할 수 있고 거래 비용도 저렴한 상품이다. 다만 지수를 기계적으로 추종하기 때문에 ‘지수 상승률=ETF 수익률’ 공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추종하는 지수를 두되, 투자종목이나 매매시점 등을 운용사 재량에 맡기는 게 액티브 ETF의 특징이다. 포트폴리오 조정이 자유로운 일반 펀드와 수수료가 싼 ETF의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상품’인 셈이다. 금융당국은 ETF의 기준가가 지수 움직임에서 10% 이상 벗어나면 상장폐지하는 규정을 완화, 오차 범위를 30%로 넓힐 계획이다. 지수가 10% 상승했을 때 ETF 기준가가 30~40% 오르거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해도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또 부동산투자신탁(리츠), 마스터합자회사(MLP) 등 다양한 실물자산의 가격과 연동하는 대체투자 상품을 활성화해 ETF 시장을 풍성하게 할 방침이다.

(3) 자산배분 펀드 진화

연금에 적합한 자산배분펀드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재간접 펀드와 관련된 규제를 완화해 주식 채권 파생상품 부동산 등에 골고루 자산을 나눠 담는 자산배분펀드를 쉽게 구성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지금까지는 자산배분 펀드가 담는 펀드 중 같은 운용사 상품의 비중을 50% 이하로 맞춰야 했고, 재간접 펀드가 재간접 펀드를 담는 것도 금지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같은 걸림돌이 모두 사라진다.

업계에선 운용사별 대표 자산배분펀드의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운용사와 협력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자산배분펀드를 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대형 운용사들은 자사 펀드만으로도 글로벌 자산에 골고루 투자하는 자산배분펀드를 구성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간접 펀드 형태로 운용되고 있는 부동산·인프라 관련 상품을 자산배분펀드에 담을 수 있게 된 것도 포트폴리오 다양화에 보탬이 될 전망이다.

투자자의 은퇴 시점에 맞춰 운용방법을 자동으로 바꿔주는 타깃 데이트 펀드(TDF)가 활성화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퇴직연금 대부분이 TDF 성격을 띤 자산배분펀드로 유입되는 미국과 비슷한 흐름이 나타날 것이란 분석이다.

(4) 파생상품으로 위험 낮춰

주식과 파생상품에 동시에 투자, 손실 위험을 낮춘 상품도 늘어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펀드가 담고 있는 옵션 등 파생상품의 위험 평가 산정방식을 미국이나 유럽 수준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보수적인 기준 탓에 파생상품을 펀드에 집어넣기 힘들다는 업계 의견을 전격 수용했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선 하락장에서 손실을 줄일 수 있는 펀드, 최대 손실폭을 제한할 수 있는 펀드 등이 잇따라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수 옵션을 매도하는 전략을 병행하는 ‘커버드콜 펀드’가 전성기를 맞을 전망이다. 지금도 자산 중 일부를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펀드가 있지만 편입비중이 낮아 투자자가 체감할 만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 재간접 펀드

fund of funds. 자산 중 일부를 다른 펀드에 투자하는 펀드. 포트폴리오가 다양한 자산배분펀드 대부분이 재간접 형태다.

■ 타깃 데이트 펀드

target date fund. 근로자의 은퇴시점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알아서 바꿔주는 펀드. 은퇴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채권 등 안전자산 비중을 높이는 게 일반적이다.

■ 커버드콜 펀드

covered call fund. 콜옵션을 매도하는 전략을 병행하는 펀드. 횡보장이나 완만한 하락장에서 콜옵션 프리미엄만큼 추가 이익을 낼 수 있다.

■ 상장지수증권(ETN)

exchange traded note. 채권 원자재 통화 금리 변동성 등을 기초자산으로 삼는 파생상품. 상장지수펀드(ETF)처럼 시장에 상장돼 있어 원하는 시점에 사고팔 수 있다.

안상미/송형석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