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수의 약 파는 이야기⑨] 한국에 리베이트를 허(許)하라
제조업 침체와 잇단 기술수출 성과에 제약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걸음에 속도가 붙을라치면 잡아채는 것이 '불법 리베이트'다.

2010년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도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 2014년 리베이트에 두 번 이상 적발된 의약품을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서 영구 퇴출하는 '리베이트 투아웃제' 시행 등 강력한 정부의 규제에도 리베이트 관행은 여전하다.

올해에도 의사 270여명에게 56억원 상당의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파마킹 사건부터, 18억원 규모의 전주 J병원 사건 등이 터져나왔다. 불법 리베이트는 국내 업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서부지검 의약품 리베이트 합동 수사단은 지난 2월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의 한국법인을 압수수색하고, 리베이트 혐의를 조사 중이다. 다국적 거대 제약사도 리베이트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전담 수사반이 있다는 것 자체가 불법 리베이트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수년간 이어진 정부의 규제, 검경의 지속적인 단속에도 제약업계의 불법 리베이트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불법 리베이트가 구조적인 문제란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전문의약품의 경우 이를 처방하는 의사에게 모든 권한이 있다. 약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환자들은 의사의 처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그동안 대부분의 제약사들은 경쟁력 있는 신약을 만드는 대신, 투자비가 별로 안 드는 복제약(제네릭) 생산에 전념해 왔다. 의사 입장에서는 약효가 비슷한 약들 중, 자신과 병원에 부가적인 이익을 제공하는 제약사의 약을 처방하게 되는 것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전문의약품은 오남용을 부추길 수 있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광고를 할 수 없다"며 "의사와 병원에 대한 리베이트 제공이 거의 유일한 영업활동"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구조에서는 리베이트 앞에 붙는 '불법'이란 단어를 떼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2013년 9월부터 '선샤인 액트(Sunshine act)'법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의 제약사 의료기기업체 구매대행사 등은 경제적 이익을 의사나 병원에 제공할 경우 이를 공개해야 한다. 10달러 이상의 리베이트를 제공하면 이 사실을 보건당국에 알려야 하고, 이를 어길 경우 건당 최대 10만달러(약 1억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일본과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도 선샤인 액트를 시행 중이다.

미국계 글로벌 제약사에서 근무했던 한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은 선샤인 액트로 불법 리베이트가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며 "의사들은 윤리적 부담, 제약사는 규제 부담 등으로 자정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샤인 액트 도입시 리베이트를 많이 제공할 수 있는 대형사만 유리할 것이란 지적에 대해서는 "경쟁력 있는 약이 있다면 무관한 얘기"라며 "의약품 경쟁력 없이 리베이트에만 의존하는 제약사가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리베이트가 불가피하다면 이를 햇빛(Sunshine) 아래 둘 필요가 있다.

한민수 한경닷컴 기자 hm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