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개입액 중국 4천600억달러, 한국 260억달러로 추산"
전문가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에 대비해야"


미국 재무부가 29일 한국을 포함한 5개국을 환율 조작과 관련한 '관찰 대상국 (Monitoring List)'에 올리면서 추후 '심층분석대상국(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재무부의 이번 환율정책 보고서는 개정 미국 무역촉진진흥법(BHC수정안)에 따라 처음 작성된 종합적, 심층적 성격을 지닌데다, 상대국에 민감한 시장개입 추정치까지 제시하며 압박강도를 높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 외환시장 환경도 다소 부담스럽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늦춰지면서 약달러에 속도가 붙은 상황은 상대국에게 수출경쟁력 유지 등을 위한 통화가치 절하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이에 따라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 재무부는 관찰 대상국에 올린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독일 등 5개국의 경제동향과 외환정책을 밀착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는 기존에 4월과 10월에 발표된 반기별 환율보고서를 대체한다.

◇ 시장개입 규모 이례적 공개…한국 등 5개국 세가지 기준 중 2개에 걸려

[미국 재무부 주요 교역대상국의 환율정책보고서 캡쳐]

미국은 법 개정에 따라 이번에 세 가지 분석 잣대를 들이댔다.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달러 이상인지, 해당국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의 경상수지 흑자를 냈는지, 해당국 통화가치의 상승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일방향의 반복적인 개입을 했는지 등 세 가지다.

시장개입은 그 순매수 규모가 GDP 대비 2%를 넘는지와 12개월 가운데 8개월 이상 순매수했는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미 재무부는 이를 토대로 분석해보니 세 가지 조건에 모두 걸린 곳은 없고 2개에 해당한 5개국을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독일 등 4개국은 무역흑자와 경상흑자 기준에 걸린 반면 대만 혼자 경상흑자와 시장개입 기준에 해당했다.

국가별 분석내용을 보면 한국은 작년 대미 무역흑자가 283억 달러에 달해 상당한 무역수지 흑자를 유지하고 있고, 작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가 7.7%로 최근 3년간 3.5%포인트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재무부는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규모를 GDP 대비 0.2%인 260억달러(약 30조원)로 추산했다.

재무부는 "한국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난 3월까지 국제금융시장의 격변에 대응해 원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한 개입에 나서 선물환과 스와프시장에서 활동을 포함해 260억 달러의 외환을 판 것으로 추산된다"면서 "이는 과거 몇 년간의 (원화 가치) 상승을 막기 위한 비대칭적인 개입에서 벗어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평가는 우리에겐 나쁘지 않다.

미국이 주로 경계하는 것이 상대국이 달러 대비 통화가치를 떨어뜨리거나 그 상승을 막는 형태의 개입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함께 대미 무역흑자가 가장 많았던 국가는 중국으로 무려 3천657억 달러에 달했다.

이어 독일(742억달러), 일본(686억달러), 멕시코(584억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가 높은 국가는 대만(14.6%), 독일(8.5%), 한국(7.7%), 일본(3.3%), 중국(3.1%) 순이었다.

대만의 경우 일방적이고 반복적인 외환시장 개입이 문제가 된 유일한 국가로 꼽혔다.

대만은 GDP대비 외환시장 개입 규모가 2.4%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돼 유일하게 외환시장에서 일방적이고 반복적인 개입을 하는 국가로 분류됐다.

잭 루 미국 재무장관[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무부는 중국의 외환시장 개입 규모가 4천80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 반면, 일본에 대해선 지난 4년간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재무부는 "어떤 주요 무역상대국도 3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지 않은 것은 지난해 신흥시장에서 대대적인 자본유출로 일부 국가들이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게 된 세계경제 상황을 반영한다"면서 "이런 흐름은 이례적으로 강해 더 많은 국가가 환율조작국 기준을 넘어설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 경제전문가 "원화가치 급등시 환율조작국 기준 넘어설 가능성"

경제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현재와 같은 수준에서 유지된다면, 한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만약 원화가치가 급등하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지정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단기적으로 원화가치가 급등(원/달러 환율 하락)하면 미세조정을 위한 시장 개입 필요성이 생기고, 이런 상황에서의 개입은 미국이 경계감을 갖고 주목하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상보다 늦춰지면서 최근 글로벌시장에서는 달러 약세 움직임이 뚜렷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내수 중심으로 경제성장 전략을 전환해 무역·경상수지 불균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개정된 미국 무역촉진진흥법에 따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는 국가는 1년간 국제통화기금(IMF)이나 WTO를 통한 간접제재를 받는다.

이후에도 저평가가 개선되지 않으면 미국 기업의 신규투자를 받을 때나 해당국 기업이 미국 정부와 계약을 맺을 때 불이익을 받는 직접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관찰대상국에 대한 제재는 규정돼 있지 않다.

LG경제연구원 배민근 연구위원은 "대미 무역수지 흑자나 경상수지 흑자는 고정적으로 구조화돼 있기 때문에, 갑자기 바뀌기는 쉽지 않다"면서 "결국 문제는 환율인데, 현재와 같이 변동성이 심한 상황에서는 일방향으로 지속적인 개입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미국 경제의 무역수지 적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달러 강세가 한계에 봉착, 원화가치가 급등할 경우 환율조작국 지정조건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면서 "방어가 가능하도록 투명한 정보공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성훈 부연구위원은 "한국은 근본적으로 수출과 부동산 위주의 경제성장 전략에서 벗어나 내수 위주의 성장전략으로 전환해 무역·경상수지 불균형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조선이나 해운업종뿐 아니라 전방위적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을 개선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 재무부도 보고서에서 "무질서한 금융시장 환경에 처했을 때만으로 외환시장 개입을 제한할 것을 한국에 당부했다"면서 "외환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고 한국 정부 당국이 내수 지지를 위한 추가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yuls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