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투자한 증권사들 환장하겠네
비상장 화장품 업체에 회삿돈을 투자한 국내 증권사가 지난해에만 수십억원대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화장품주 ‘몸값’이 정점을 찍은 지난해 상반기 투자한 회사가 기업공개(IPO)에 실패하거나 상장 후 주가가 급락하는 등 악재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저가 화장품 업체 네이처리퍼블릭과 잇츠스킨, 토니모리 등의 비상장 주식에 투자한 증권사들이 10~50%대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월 네이처리퍼블릭에 자기자본 49억원을 투자한 신한금융투자는 13억원(-26%, 작년 말 장부가액 기준)의 손실을 냈다. 130억원을 투자한 유진투자증권도 최소 20% 이상의 손실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6월 고유자금과 고객 신탁자금 등으로 이 회사 지분 25만주를 주당 13만8000원(총 345억원)에 사들인 유안타증권의 평가액도 절반 이하로 줄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지난해 상장을 앞둔 화장품 업체 중 ‘최대어(魚)’였다. 국내 7대 화장품 업체 가운데 유일한 비상장사인 데다 중국 시장 성장세를 감안하면 상장 후 최소 30% 이상의 수익률을 낼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하반기 100억원대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정운호 대표가 구속되면서 IPO 작업은 무산됐고, 한때 17만3500원(지난해 7월9일)까지 오른 장외 주식 가격은 현재 6만5500원(지난 12일 종가)으로 하락했다. 대주주 도덕성 문제는 IPO 심사를 하는 한국거래소가 가장 중요하게 살펴보는 잣대 중 하나다.

지난해 12월 상장한 잇츠스킨에 투자한 증권사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8월 잇츠스킨 장외 주식 18억원어치를 샀지만 연말 평가액은 10억원으로 줄었다. 투자 수익률이 -44%에 그쳤다. 당시 25만~29만원 사이를 오가던 비상장 주식 가격이 중국 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 지난해 말 15만원대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회사에 45억원을 투자한 미래에셋대우도 연말 기준 -20%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고, 키움증권과 메리츠종금증권이 각각 10% 정도의 손실을 냈다.

잇단 투자 실패로 자기자본 운용을 대폭 늘린 증권사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증권사들은 증권 업황 악화와 투자금융(IB) 성장 정체를 타개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자기자본투자(PI: principal investment)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장외주식 중개사이트 프리스닥의 정인식 대표는 “장외 주식 거래시장 활성화로 ‘프리 IPO(상장 전 지분 투자)=고수익’ 등식이 기관투자가 사이에서 깨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