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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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투자은행(IB)센터를 만들어 시장을 이끌겠습니다. 벤처모험자본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사모펀드(PEF), 부동산, 사회간접자본(SOC) 등 투자를 확대하겠습니다."(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우리투자증권과 NH농협증권,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미래에셋대우), KB금융과 현대증권까지 기존에는 없었던 초대형 증권사들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초대형 증권사들의 등장은 금융투자업계가 기존 위탁매매(브로커리지)에서 IB로 재편되는 신호탄이다. 금융당국도 5년 만에 관련법을 재정비해 금융투자업계를 지원하고 제도적 걸림돌을 치우겠다는 방침이다.

IB는 기업 자금조달과 인수합병(M&A),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모펀드(PEF) 운용 등 기업금융과 관련된 모든 투자 사업을 뜻한다. 기존의 위탁매매가 수수료 경쟁과 저성장 등으로 한계를 드러낸 상황에서 성장잠재력이 큰 IB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 글로벌 '체급' 맞춘 국내 증권사, IB 전성시대 맞이할까

국내 한 대형증권사 IB부문 관계자는 "5년 전만해도 인수금융 시장이 블루오션이었는데 점점 뛰어드는 증권사가 많아지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인수금융뿐 아니라 IB 관련 부문에서의 경쟁이 치열, 팀 단위의 인력 이동도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말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IB 부문 강화에 나서는 증권사는 미래에셋증권이다. 미래에셋증권은 글로벌 IB 증권사로 나아가기 위해 대우증권을 인수, 자기자본 6조원대의 국내 최대 증권사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실제로 박 회장은 대우증권 인수를 발판으로 글로벌 IB 증권사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글로벌 IB센터를 만들어 벤처모험자본 투자를 강화, 다양한 IB 사업 부문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비단 미래에셋증권뿐이 아니라 다른 증권사들도 조직 개편 등을 통해 IB 부문 강화에 힘쓰고 있다.

NH투자증권은 기존 IB사업부 내 프라이빗 에쿼티(PE)부와 NH농협은행 PE단을 통합해 'NH투자증권 PE본부'를 만들었다. 한국투자증권은 기존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본부, 퇴직연금본부, 기업금융본부를 하나로 묶고, IB그룹을 신설했다. 삼성증권도 기존 IB 본부 산하에 투자금융사업부를 새로 만들었다.

신한금융투자는 기업금융본부를 대기업 및 빅딜 위주의 기업금융1본부, 중소·중견기업 영업 중심의 기업금융2본부 체제로 이원화했다. 또 대체투자부와 신디케이션부의 부서 역할도 강화했다. SK증권은 IB사업부문 관련 2개 본부를 기업금융1, 기업금융2, 구조화1, 구조화2 등 4개 본부로 확대했다.

증권사들이 발 벗고 IB부문에 뛰어드는 것은 그만큼 기존 위탁매매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위탁매매 수수료 중심의 영업구조는 주식시장의 변동성에 직접적으로 노출된다. 더욱이 증권사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위탁매매 수수료율은 생존이 어려울 만큼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의 시장 자금조달, M&A, IPO 등이 늘어나면서 IB 부문의 성장성이 커졌다"며 "IB 부문의 경우 증권사의 역량이 커지고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만큼의 돈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에 증권사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초 영국계 M&A 분석기관인 '머저마켓'이 내놓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M&A 시장의 거래액은 875억 달러(100조562억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으로 커졌다. 이는 3년 전인 2012년(295억달러)과 비교하면 약 3배 정도 불어난 셈이다.

기업공개(IPO) 시장도 확대됐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합쳐 IPO로 조달된 자금은 4조9548억원으로 전년보다 1.5% 늘어났다. 특히 지난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기업들의 공모금액은 2조1190억원으로 1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국내 IPO 시장은 지난해보다 더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호텔롯데 등 초대형 기업의 상장이 예정된데다 외국기업인 LS전선아시아, 인터코스 등도 상장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 '갈 길 먼' 글로벌 IB 도약…금융당국 '초대형 IB 육성안' 마련

국내 증권사들이 글로벌 IB로 거듭나는 길은 이제 막 첫 걸음마를 뗀 정도다. 여전히 위탁매매 중심의 수익 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글로벌 IB들과 겨루기에는 경험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 국내 M&A 리그테이블(딜 발표·완료 합계 기준, 블룸버그) 결과, 국내 증권사 중 M&A 재무자문 10위권에 든 곳은 NH투자증권 삼성증권 등 두 곳에 그쳤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증권회사의 수수료 수익에서 위탁매매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57.8%인 반면 IB관련 수수료는 15.51%에 불과했다.

글로벌 IB와 비교해 자본규모가 작고, 아직까지 네트워크나 인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주현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기관의 인수역량은 기본적으로 자본규모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하다"며 "IB 업무 중 주관사 업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증권사가 자기계정을 통해 해당 증권을 우선 인수하고, 시장조성업무 수행과 지역매각을 통한 영업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발행 증권의 일부분을 인수할 수 있는 자본력 부문에서 국내 증권사가 글로벌 IB들과 겨루기에는 아직 격차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증권사들의 몸집은 글로벌IB와 비교했을 때 어린아이와 성인 정도의 차이다. 2014년 기준 국내 5대 증권사(삼성증권, KDB대우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의 총자산 규모 평균은 전세계 14개 글로벌 IB의 약 63분의 1 수준이다. 자기자본 규모 역시 3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국내 증권사들이 M&A를 통해 '몸집 불리기'에 나선 상황에서 금융당국도 5년 만에 제도를 고치는 등 본격적인 지원사격에 나설 예정이다. 금융위원회는 올 상반기 내에 '초대형 IB 육성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금융위는 지난 6일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를 전면 개편해 자본시장의 기업금융 기능을 강화하고 초대형 IB를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2011년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 도입 이후 5년 만의 개편이다.

금융위가 준비 중인 개편안은 △활발한 모험자본 공급 △전문적인 기업금융기능 △글로벌 경영을 위한 해외진출 등을 기본 골격으로 삼고 있다. 구체적인 방안과 세부 시행령 등은 금융투자업계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세우겠다는 방침이다.

◆ 전문가들 "IB 유동성과 기회 부족…새로운 투자기회 열어줘야"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IB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유동성'과 '투자기회'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박영석 한국증권학회장은 "IB는 결국 유동성을 가지고 시장에서 투자 대상을 찾는 비즈니스의 핵심"이라며 "증권사들이 자본금 규모를 늘려 충분한 여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동시에 투자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기존 상업은행 중심에서 IB로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 회장은 "국내의 경우 기업이 부실해졌을 때 은행 중심의 워크아웃을 진행하기 때문에 IB 시장참여자들이 진입할 수가 없다"며 "M&A 등의 방법을 통해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금융 관련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을 완화하고, 자기자본투자(PI)를 활용한 펀드 또는 구조화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개편안에 담겨야 한다는 조언이다.

은경완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NCR 등의 자본 규제 때문에 증권사들이 공격적으로 IB 업무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시장의 유동성 확대와 함께 각종 규제들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하 / 김근희 한경닷컴 기자 mina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