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반발에…'자투리 펀드' 청산 쉽지 않네
투자자가 많지 않은 ‘자투리 펀드’를 정리하겠다는 금융당국의 계획이 흔들리고 있다. 설정액 50억원 미만인 펀드 비중을 19% 이하로 낮추라는 가이드라인을 지킨 업체가 절반에 불과했다. 강제로 펀드를 없애겠다는 방침에 반발하는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게 자산운용사들의 설명이다.

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자투리 펀드 비중을 공시한 40개 운용사 중 19개사가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못했다. 베어링(자투리 펀드 비중 55%) 하나UBS(50%) 알리안츠(36%) JP모간(24%) 등 외국계 운용사 대부분이 정부 허용치 이상의 자투리 펀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18.4%) KB(17.7%) 한국투신(16.3%) 등 국내 대형 운용사들은 정부 방침을 지킨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계 운용사들이 당국의 요구 수준을 맞추지 못한 것은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해외 펀드는 투자자들의 동의를 얻어 펀드를 없애는 것 외에는 자투리 상품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반면 국내펀드는 정리 작업이 상대적으로 쉽다. 포트폴리오는 같지만 별도로 기준가와 수익률을 계산하는 모자형 펀드로 전환하거나 비슷한 펀드끼리 합병하는 등의 방법을 쓸 수 있다. 기존 펀드와 포트폴리오가 비슷한 상품으로 갈아탈 기회를 주는 만큼, 투자자들의 거부감이 덜하다는 설명이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마케팅팀 담당자는 “오랜 기간 손실을 내다가 최근 손실 폭이 줄어들고 있는 해외 펀드가 많다”며 “이런 상품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에게 펀드를 없애야 한다고 설득하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운용사의 소규모 펀드 정리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6월 말까지 11%, 9월 말까지 7%, 연말까지 5% 이하로 비중을 낮춰야 한다.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어기면 신규 펀드를 내놓을 수 없다. 업계에선 자투리 펀드 비중을 10% 밑으로 내려야 하는 올해 하반기엔 정부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운용사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중소형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무분별한 펀드 출시를 막고, 운용 효율 등을 위해 소규모 펀드를 줄여야 한다는 당국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운용사별, 펀드별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일괄적인 비율을 강요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말 소규모 펀드를 정리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지난달 말까지 52개 운용사가 406개 펀드를 없애는 게 1차 목표였다. 자산운용사들은 펀드를 얼마나 정리했는지에 대한 자료를 지난 5일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