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투자자들이 대형 인수합병(M&A) 거래를 활용한 공매도(short selling)로 연이어 큰 수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수 주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피인수 기업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미리 빌려놓은 주식을 한꺼번에 팔아치우는 전략을 통해서다.
공매도 무패행진…대형 M&A 터지면 웃는다
○현대증권 주가 왜 떨어졌나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현대증권 주가는 4.22% 상승한 6670원에 거래를 마쳤지만 지난달 31일부터 전날까지 3거래일 동안 10.1% 급락했다. 일반적인 M&A에서 피인수 대상기업 주가가 시너지 기대 효과로 상승하는 것과 정반대 움직임이다.

단기간에 주가가 크게 출렁거린 것은 공매도 때문이다. 평소 5억원 안팎이던 공매도 금액은 KB금융지주가 경영권을 가져갈 것으로 알려진 직후인 지난 1일 180억원으로 폭증했다. 주가가 급락한 3거래일간 공매도 금액은 251억원에 달한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비싼 값에 판 뒤 싼값에 되사 수익을 올리는 투자기법이다. 국내 공매도 주체는 70~80%가 외국인으로 대부분 헤지펀드다.

전문가들은 공매도 주체의 노림수를 ‘현대증권에 불리한 합병비율 산정’으로 분석하고 있다. 앞으로 KB금융지주가 100% 지분을 보유한 KB투자증권과 22% 지분을 보유한 현대증권을 합칠 때 현대증권에 ‘불리한 합병비율’(가령 주가가 낮을 때 합병을 결의)을 적용, 적은 비용으로 지배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현대증권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제시한 정길원 대우증권 연구원은 “현대증권 시가가 낮아야 대주주 지분율 상승에 유리하다”며 “합병비율이 공식 발표될 때까지는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주가 하락에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M&A가 호재만은 아닌 이유

지난해 말 미래에셋그룹의 대우증권 인수 발표 때도 비슷한 양상이 펼쳐졌다. 대우증권에 대한 공매도는 미래에셋이 최고가로 입찰했다는 보도가 나간 이튿날인 지난해 12월22일 55억원으로 불어났다. 평소의 5배 수준이었다. 당일 대우증권 주가는 6.82% 급락했다. 대우증권에 불리한 합병비율을 염두에 둔 공매도 물량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쏟아지며 대우증권 소액주주들의 불만을 키웠다. 5일 대우증권 종가는 7850원으로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전 1만1000원 대비 28.6% 급락했다.

지난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도 공매도 투자자들에게 큰 승리를 안긴 사례다. 5월 합병계획 발표 뒤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쏟아진 공매도 물량은 하루 400억원을 웃돌기도 했다. 합병 후 존속법인인 제일모직(지금의 삼성물산) 주가는 이날 13만9500원으로 합병 발표일(18만8000원) 대비 34.7% 떨어졌다. 김영성 대우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공매도 투자자들은 M&A 등으로 기업 가치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기를 활용(event driven)하는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한다”며 “그동안 국내 합병 과정에서 대주주의 이해관계가 강하게 작용한 사례들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합병가액 산정 방법이 비정상적인 주가 움직임을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우리처럼 합병가액을 반드시 시가로 하라고 정해놓은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기준 가격을 합병 당사자 간 합의로 정할 수 있도록 폭넓은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